“그렇지만 모든 매혹은 똑같은 거예요.” 그가 말했다. “내면의 빈 곳에서 오거든요.”

그는 검지로 가슴을 쿵쿵 쳤다.

“뭐가 없어지면 그 자리를 채워야 하거든요. 책·그림·사람, 다 똑같단 말입니다….”

                        - 당 신 을 믿 고 추 락 하 던 밤(The Blindfold by Siri Hustvedt)


0. 매혹적인 이야기. 신경질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1. 첫문장에 붙들리고는 앉은 자리에서 책을 완독한 게 얼마만인지. 격렬함 뒤 찾아오는 나른함이랄까. 책을 덮고 한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2. 각각의 단편 속에서 감수성 예민한 문학전공 대학원생 아이리스는 사랑과 예술, 이상적 자아와 낯선 자아 속에 사로잡혀 있는 개성 강한 인물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인물과 관계와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 흥미로운 점은 한 인물의 기행에 가까운 행태가 다른 이야기 속의 아이리스에게 엿보인다는 것이다. 죽은 여인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모닝 씨라든가 자아가 분열된 O, 기괴한 연출에 열중하는 조지의 모습은 아이리스가 스스로 발굴해내는 내면의 모습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연작소설집이지만 마지막 수록작은 앞선 세 작품을 시간적으로 품고 있다. 불현듯 끝나버리는 엔딩이 앞선 세 단편에서는 매력적이었으나 마지막 단편에서는 다소간 허탈. 아이리스의 긴 방황에 마침표를 찍는 듯하지만, 다른 결말들에서처럼 깊은 여운을 맛보진 못했다. 어쩌면 읽느라 지쳤는지도. 하지만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은 대부분 마지막 단편에 모여 있었다. 

3. 마지막 단편에서 아이리스가 그림을 묘사하는 대목. 첫번째 단편에서 모닝이 죽은 여인이 남긴 소지품 묘사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 기억을 기억하는, 사후의 삶.

"현실의 빛이 아니라 내면의 빛이랄까, 강력한 기억의 빛이에요.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이미 지난 일처럼, 이미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마 그래서 나중에 그렇게 강렬한 효과를 낳나 봐요. 내 말은 그 사물 자체가 기억이고 사후의 삶이고, 그래서 기억을 기억하고 있는 거라는..."


4. 소설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한 대목.  

"그 여섯 블록은 오디세이가 무색했다. 시각과 함께 평형감각이 사라졌고 나는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머릿속으로 한 블록 한 블록을 헤아려 전진했다. 마이클이 인도하려고 팔을 뻗었지만 난 그를 밀어내며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5. 때로는 한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묻어둬야할 말도 있다. 

"말이 시간을 두고 가라앉아야 할 때가 자주 있죠. 있잖아요, 한동안 땅 속에 묻어두는 거."







중학교 때 한 친구는 삼위일체설이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아서 나를 따라 교회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올해 5학년인 딸아이는 신을 지나치게 인격화시킨 나머지 신의 성정체성과 인종정체성을 헷갈려하면서 신성과 인성의 개념을 마구 뒤섞고 있다. 언젠가 아이가 그려낸 신이 (심지어 그리스신 제우스도 아닌)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느낌이라 무슨 하나님이 이렇냐며 큭큭거렸는데 아이가 조금 상처받은 얼굴을 해서 그 뒤로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들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호흡한 나머지 내 신앙이 내 정체성의 기반인 것은 맞으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것에 비하면 그 신앙은 여물지 못했다. 내 믿음은 희끄무레하게 보이기는 하나 손에 잡히지는 않는 연무처럼 가끔 피어오르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그들에게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타고난 기질상 논리적이지 못하고 직관적이며,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각 잡힌 세상보다는 우연과 필연이 성기게 짜여 틈새 많은 세상을 깊이 아낀다. 그러니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기도 했지만, 이미 마음속 깊이 결론은 내려졌던 것이다. 그건 애초부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하는 내 빈약한 언어로는 신을 말할 수 없다, 라고.

 

그렇다 해도 신과 종교에 대해 묻는 딸아이의 요구를 맞닥뜨리면 나 또한 이해가능한 언어로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에게

 

라틴 신학의 아버지 테르툴리아누스는 "믿으면 안다"라고 표현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믿는 것이 아는 것의 출발이다"라고 가르쳤으며, 또 안셀무스는 "믿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라고 (p60)

 

말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와 내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이것이 내가 받은 대답이었고 나는 오랫동안 실망하고 회의했기 때문이다.

 

2014416일 이후 나는 깊이 의심했고 분노했고 절망했다. (거의) 전 국민이 기적을 바라며 사는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이 가망 없는 나라를 떠나고 싶었고 기적을 호소하느라 몸과 정신과 삶이 피폐해졌을 부모들을 떠올리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 가운데는, 나 같은 쭉정이 신자가 아니라 신실한 기도로 아이를 키웠을 부모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신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했다고 울부짖진 않을까. 아니면 그 참혹한 시절도 기도의 힘으로 통과해냈을까.

 

구약성경의 '욥기'는 욥이라는 한 정의롭고 신실한 인간에게 벌어지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비극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모든 비극을 맞닥뜨린 인간. 재산과 명예와 가족과 건강과 친구들을 순차적으로 잃고 결국 신에게도 버림받았다고, 이것은 신이 주는 벌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절망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약한 나는 욥기를 읽지 못한다. 읽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 영화 <곡성>을 보았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지, 탄식이 나왔다. 누가 선인지 악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구하지 못했다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선이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도 악이 더 강해서도 아니라 인간이 그저 나약해서였다. 속수무책이었다.

 

 


영화 <곡성>에서 종구(곽도원)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괜찮아, 우리 효진이. 다 꿈이야. 아버지가 다 해결할게." 꿈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해결하지 못했다. 엔딩컷을 보고 일어서는데 나는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아무리 그 이유를 물어도 그 답을 들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어떤 죽음은 무명이 매섭게 짚어준 종구의 죄처럼 그 원인이 보이며 어떤 죽음은 일광이 심드렁하게 말했듯이 그저 운나쁘게 벌어진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시기와 방식에 관한 것이다. 누구나 맞게 될 필연적 소멸. 어느 누구도 그 소멸을 막을 수는 없다. 단지 시기와 방식만 바뀔 뿐이다. 그걸 굉장히 무참한 방식으로 두시간 삼십분 동안 목도한 것 같다.

 

영화의 후유증은 꽤 컸다. 영화가 주는 쟝르적 쾌락은 컸으나 영화가 담고 있는 메세지를 아무리 궁굴려봐도 허탈함과 불편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건 어린 시절, 욥기를 처음 읽고 난 뒤의 마음과 비슷했달까.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현혹당하여 의심하고 분노하다 불신하고 절망하는 것밖에는 없는가. 의심과 현혹과 불신이 죄의 미끼이며 그 결과가 참변밖에는 없다면 (영화에서는 왜 하필 내 딸이냐고 절규하는 종구에게 무명은 네 딸의 아비가 의심하는 죄를 저질러서라고 답한다) 우리의 미래는 이미 예정되었다. 의심과 현혹과 불신에서 자유로울 인간이 얼마나 많을까. 그 믿음이 신실하고, 타고난 기질이 강건하다 해도 곧 현실로 닥칠 자식, 아니 온가족이 맞게 될 참혹한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가 있을까. , 있었다. 그게 욥이었다. 그리고 욥은 믿음의 대가로 구원을 받았다. 허나 어린 마음에 나는 선한 인간을 악이 시험하도록 놔둔 신에게 화가 났다. 왜냐하면 욥과 같지 못한 나는 악의 손에 놀아나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울부짖으며 결국 신을 의심하고 책망할 것이며 그 죄로서 버려질 것 같아서였다. 나는 그 뒤 의도적으로 욥기를 피했다. 회의하는 것조차 불경하게 느꼈던 어린애였다. 의심을 하다 보면 "내가 믿는 신은 어떤 신인가"를 묻다가 필연적으로 신의 실재를 묻게 될까 봐 그렇게 불신자가 될까 봐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그건 내가 딛고 선 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다르지 않았다.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 8점
김용규 지음/휴머니스트

 

곡성을 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책장에서 그 책부터 찾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나는 많은 질문에 시달렸고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그때 발견한 책이 하나 있었다. <곡성>이 다시 촉발시킨 인간으로서의 무력감을, 그리고 누군가의 황망한 죽음을 맞이한 뒤 우리가 맞닥뜨릴 실존적 질문들을 다시 곱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김용규의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을 떠올렸다.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은 타계하기 전 가톨릭 교회의 신부에게 24개의 질문을 써서 보낸다. 이 질문지는 한때 신부들 사이에서 돌았고 차동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질문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내놓은 실존적 물음들이다. '''존재의 근원', '종교', '영혼', '사후 세계' '선과 악' '종교와 과학' '종말' 등에 대해 이른바 '백만장자'는 날카롭게 묻고 있다. 그리고 '신을 이야기하는 철학자' 이용규가 '종교적 관점과 언어'가 아닌 '인문학적 관점과 언어'로 답한다.

 

어떤 종교의 주장을 그 종교의 관점과 언어로 설명하는 말이나 글은 그 종교의 구성원들에게는 은혜롭다. 하지만 자폐적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그 종교 밖의 사람들에게는 거북스럽기 십상이다. 그러나 종교적 담론도 인문학적 관점과 언어로 설명되면 덜 은혜롭긴 해도 거북스러움이 덜하다. 이것이 내가 의도하는 바다.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의 뒤를 이은 마키아벨리, 에라스무스, 토마스모어, 기욤 부데 같은 르네상스 시대 학자들은 자신들의 인문학적 작업을 담아낼 고유의 글쓰기 방법을 개발하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서구 글쓰기의 한 전범으로 내려온 인문주의적 글쓰기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일반적 양식이 있다. 비교적 긴 문헌학적 설명으로 글을 시작하여, 개념을 정리하고 문법과 논리에 호소하며, 수사학적 표현을 집어넣고, 고대 작가들의 고전적 지식을 끌어다 활용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 회장의 질문들에 대해, 되도록 이 방법을 따라 답하고자 한다. (p13)

 

종교의 교리를 따져 묻던 그 옛날의 친구처럼 이제 본격적으로 신에 대해 묻기 시작한 아이처럼 누군가가 내게 다시 묻는다면 신앙이 여물지 못한 나는 인간의 언어로 답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믿으라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신의 언어가 아니라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제껏 내가 발견한 인간의 언어 가운데 최선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잠 못 드는 밤이 있다. 악을 처단하고 살아남은 주인공 뒤로 흐릿하게 드리워진 불길한 기운처럼 불안과 두려움이, 근심과 걱정이 내 머리맡을 찾아온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선악과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고통이라면,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심한 사람의 신발 밑창에 언제 깔려 죽을지 모르는 개미와 다를 바 없다면, 우리의 매일의 안녕을 위한 기도가, 정의와 선에 대한 갈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도, 어쩔 도리 없이 기도하게 된다. 한밤중에 깊이 잠든 아이의 작은 머리와 여린 어깨와 마른 등줄기와 햇빛에 여문 손을 쓰다듬고 있으면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이 너무도 약한 존재처럼 여겨져서 기도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나는 정원에서 철학자와 앉아 있다. 철학자는 우리 가까이 있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나는 저것이 나무라는 것을 안다"고 자꾸 반복해서 말한다. 다른 사람이 와서 이 말을 듣는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이 친구는 미치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철학을 하고 있을 뿐이다." (p824. 비트겐슈타인의 말 인용. The Duty of Genius 비트겐슈타인 평전.) "


                드디어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완독했다. 마지막 챕터를 남겨놓고서 책을 덮은 뒤 한 계절이 지났다. 여름은 언제 어디서나 가족과 함께였고, 고독은 고대 유물 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 같은 것이다. 그게 뭔가요? 누가 물어보면 어깨를 으쓱이며 글쎄요, 귀한 것 같긴 한데 저도 최근엔 본 적이 없어서... 대꾸하게 되는, 뭐 그런 것이랄까. J 말에 따르자면, "고독은 기분이 가라앉아 우울한 것 같은데, 마음이 전환되는 것 같은, 마음 깊이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이라는데 (헐... 벌써 외로움과 고독을 구별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고독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말하자면 말이지.      

                결국 그는 죽었다. 그렇게 끝났다.

               암에 걸렸다. 왠지 그럴 것 같더니.

               장례식 절차를 두고서 그의 친구들이 가톨릭 식으로 따를지 고심했다. 마치 잘못 치루면 그가 관에서 벌떡 일어나 생전에 내가 그렇게 가톨릭을 비판했는데 너희들이 내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따져 묻기라도 할까봐 소심해진 모습들이었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

                그가 남긴 유언이다.

                그의 철학은 난해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멋있고 그란 인간은 애처로운데 그의 삶은 묘한 감동을 준다. 자신이 하는 일에 진절머리 날 만큼 철저하고자 했던 철학자. 자신의 삶은 본성과의 철저한 투쟁의 연속이었다는 그의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저 너 자신을 개선시켜라. 그것이 네가 세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평전 - 10점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필로소픽

 

 

 

 

         

            올 여름은 유난히 여행이 고팠는데 그때마다 허기를 달래준 책.

             배수아의 독특한 여행 에세이,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이 책만 펼쳐들면 언제 어디서든 일상으로부터 수천 킬로나 멀어질 수 있었다. 이제껏 배수아의 글을 즐겨 읽지 않았는데, 이 에세이는 아껴가며 읽었다. 특히 몇몇 부분은 거듭 읽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이 책을 배수아 입문서라고 떠들어댈 생각이다.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 8점
배수아 글.사진, 베르너 프리치 사진/가쎄(GASSE)

              

                      

 

 

 

여전히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는 중이다. 그리고 그를 그렸다.

 

 

 

 

 

1. 어제 정리한 글에서 나를 몇 개의 형용사로 요약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그것의 불필요함을 토로했다. 심지어 그 글을 마무리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문장을 빌려왔다. 그런데 그 글에서조차 나는 몇 개의 형용사로 비트겐슈타인을 요약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J에게 외롭다는 것과 심심하다는 것을 구별해보라고 했다. J 왈,

      "외로운 건,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심심한 건, 여기 저기 눈알을 굴리면서 보는 거지. 뭐 재미있는 게 없나, 하고."

      좀더 구체적인 '설명' 어쩌면 '정의'를 원했지만 "너, 참 문학적이구나." 하고 말았다.

      문학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그리고 (맥락은 다르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의, "말하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구분이 떠올랐다. 

 

2. 주말에는 그의 평전을 읽기 괴로웠다.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돼서였을까, 그의 특정 언행이 싫었다.

 

한때 비트겐슈타인과 우정을 나눴던 케인스가 그의 철학에 경도돼 있음에도 그와 사적으로 만나기를 기피하고 비트겐슈타인이 그렇게 자신과의 우정을 되살리길 원했음에도 그와는 공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려는 게 처음에는 몰인정해보였다. 그런데 나중에는 비트겐슈타인을 어떤 식으로든 상대해야 하는 케인스가 되레 측은하게 느껴졌다. 

 

비트겐슈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 그에게 '정확한 생각'을 '틀리지 않게' 전달하는 게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해서 정신적으로 녹초가 돼버린다고 케인스가 그에게 편지로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말을 하든 틀렸다고 지적받고 그 이유를 설명해봤자 너는 멍청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피드백을 받게 된다면 어느 누구라도 긴장하고 위축될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이성으로 알려진 마르그리트와 만약 결혼하여 지극히 평범한 아이를 낳기라도 했다면- 그녀가 사랑스러운 외모에 예술적 감수성은 있었으나 그와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지성의 소유자라는 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벌어질 법한 일인데- 그 아이는 평생 열등감에 시달리며 자기를 학대했을 것이다. 딸이었다면 더 비극적이었겠지. 그가 교직을 떠났던 결정적 이유는 체벌이었는데, 특히 대수학에 쩔쩔 매는 여학생들의 뺨을 때리고 피가 날 만큼 귀를 잡아당기곤 했다. 그가 학교 동료들과 학부모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인들에게 편지로 징징거리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짜증이 나서 읽기 싫어졌다. 

 

비트겐슈타인이 인생 초반에 자살충동에 시달릴 만큼 자기 비하가 심했던 이유가 유난히 천재가 많이 배출된 집안에서 자아가 센 부모 밑에 자랐던 탓이었을까. 어머니가 죽은 직후 가족간의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될 걸 봐도 그렇다. 

 

3. 반면 어제와 오늘의 독서는 즐겁다. 

 

그의 썰렁한 말장난이 귀엽고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가령 길버트 패티슨이라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봉투에 'W.C"라고 끝나는 주소를 쓰면서 "W.C <- 화장실이라는 말이 아님" 이런 낙서를 남기는 것.

패티슨은 일종의 '세속적'이고도 '비철학적인' 친구로서 그가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뒤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일반인 대학생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와 함께 잡지를 읽고 쇼핑을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영화를 보곤 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취향. 그는 마치 스티브 잡스의 '검은 폴라티에 청바지'처럼 신중하게 선택됐으나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옷차림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목 부분이 열린 셔츠, 잿빛 플란넬 바지, 뭉툭한 구두' 차림새를 고집했다. 그리고 예술적이고 지적으로 젠체하는 영화를 싫어했고 미국 서부영화와 뮤지컬, 로코를 좋아했다!) 패티슨이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넌센스'로 이뤄지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 가령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이나 초상화들을 동봉하며 '패티슨 화백의 작품' 혹은 '(비트겐 슈타인) 최근 사진'이라고 밝히며 "지난번에는 아버지 같은 다정함"을 표현했다면 "이번 것은 승리를 표현"한다며 너스레를 서로 떨곤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과도 밟았던 절차였지만 몇 년 뒤 특정 가치관의 차이를 깨닫고서 그와도 결별한다. 도무지 끝까지 품고가는 친구가 없는 듯.  

 

4. 그의 사적인 저널 쓰기는 "자신에 관한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필요성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대체물"이었다. 그건 내가 내 자신과 아이에 대해 기록하는 일이 거의 평생의 습관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5. 가끔 사람들과의 관계가 허망하고, 그 관계에 연연해하는 자신이 유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비트겐슈타인을 굉장히 괴롭혔던 바로 그 느낌,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 탓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6. 비트겐슈타인의 박사 심사 과정에서 폭소.

 

   박사논문은 그의 '논고'였고, 시험관은 당대 최고의 두 지성인 러셀과 무어였다. 러셀은 한때 그의 선생이었지만 실질적인 제자였고 이제는 서로 피하는 사이가 됐다. 또한 무어는 비트겐슈타인이 평하길, '전혀 아무런 지적 능력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였다. (무어가 자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았다면 15년만에 어렵사리 회복된 우정이 가차없이 깨졌을 것이다.) 그들은 '상황의 부조리함'을 재미있어 하면서 토론을 '시도'했다. 곧 비트겐슈타인이 시험관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렇게 위로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토론은 금세 종결된다.

 

7. 이런 그에게 대놓고 '시의 형태'로 도전한 젊은이가 있었으니...

   줄리언 벨이라는 학생이 학생 잡지에 그를 풍자하는 시를 써내고, 비트겐슈타인이 '이 줄리언 벨들'이라고 멸시한 젊은 심미주의자들이 이 시에 열광한다.

 

     "그는 넌센스한 말을 하고, 수많은 말들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침묵하라는 자신의 맹세를 깬다."

 

8. 또다시 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금언을 생각해본다.

 

    그가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 영역은 종교와 윤리, 예술이었다. 종교적, 윤리적, 예술적 경험은 "그것들의 가치가 사실적인 세계를 넘어서" 있기에 "사실적 언어"로 포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주관적 경험을 한 뒤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언어의 오용'이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세 영역은 속성상 각각 '포교'와 '다수의 동의'와 '표현'이 수반되는데, 그렇다면 (미술과 음악의 경우는 달라지겠지만) 언어라는 매체가 필연적이며 단지 주관적 경험을 정확히 사실적 언어로 포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언어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침묵하라'는 말은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그건 언어의 오용과 과용을 주의하라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교, 윤리, 예술'이라는 영역에서는 확실히 그 금언이 유용한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 평전 - 10점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필로소픽

 

 

비트겐슈타인 평전 <The Duty of Genius>를 읽고 있다.

 

1. 지난 일요일, 훗날 철학계를 뿌리부터 뒤흔든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가 출판에의 어려움을 겪는 대목에 도달. 실소를 터뜨렸다. 

 

1)그가 돈이 없어서 출판을 못한다는 것. 그가 누구인가. 말하자면 삼성가의 막내 아들이 집안의 재산은 자신의 힘으로 축적한 게 아니므로 몇 년 전 유산을 포기했는데 선생 봉급으로는 자비출판을 할 수 없다는 것.

2)자신의 책이 졸작도 아니고 위대한 지성의 결과물인데 지인의 도움을 받아 출판하는 건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못한다는 것.

3)그의 글이 너무 어려워서 돈이 안될 것 같아 출판사가 선듯 출판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

4)출판사가 그의 글을 당대 신뢰할 만한 철학교수에게 보내 읽혀보지만, 그건 이이의 이기론을 한 백면서생에게 보내어 그 가치를 따져보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

5)그나마 믿을 만한 진보적 출판사 역시 자금난에 허덕여서 출판을 포기하는 것.   

 

2. 타고난 성격, 본성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쥐어흔드는가. 인간의 선행과 악행, 성공과 실패, 업적과 무능력, 심지어 매일의 선택과 그에 따른 행동이 본성에 굴복한 결과물이거나 본성과 투쟁한 결과물 같다.

 

3. 비트겐슈타인은 여덟아홉 살 무렵 문간에 서서 자신에게 질문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이로울 때에도 사람은 왜 진실을 말해야 할까?"

 

 그는 집안 남자들을 하나로 묶는 반항적이고 고집스러운 성격이 아니라 순응적이고 복종적인 성품을 지녔다. 친절했고, 배려했고, 복종했다. 오죽했으면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불행했다고 회상하는 어린 시절을 가족들은 그가 주어진 삶에 만족스러워하고 즐거워하던 시기로 기억할까. 심지어 가족들은 그의 취미와 재능이 공학에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그가 그들(특히 아버지)의 기대에 부합하려고 애쓴 탓이었다. 그는 타인의 비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파서 누워 있다가도 누가 물으면 괜찮다고 일어나던 아이였고, 빈의 유명 스포츠 클럽에 들어가려고 자신의 유대적 배경을 거짓말하려던 소년이었으며,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자 전문 실업 학교에 들어가 사업을 이어받으려 했던 청년이었다. (그런 그에 반해 그의 형들은 일어나기 싫으면 누워 있었고 그따위 가입조건을 내건 스포츠 클럽따위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아버지의 기대, 평생 보장된 부귀영화는 개한테나 줘버리고 생고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집을 나간다.)  

 

내면과 외면의 충돌을 아동기부터 경험했던 그는 훗날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감추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사람은 진실해야만 하고 그것이 전부"라는 가치관을 갖게 된다.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그 위기의 근원이 자신이라는 믿음"을 지녔기에 "그의 삶은 본성과의 계속되는 전투 같았"고, "무엇을 이루든 자신의 본성과의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었으며 그에게 "궁극적인 성취란 자기 자신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 곧 철학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변혁"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이후의 삶만 본다면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과 닮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는 열한 살 때 이미 가출하고자 했고 열일곱 살 때 학교에서 쫓겨났으며 무일푼으로 바이올린 하나만 들고 뉴욕으로 달아나 2년간 떠돌아다니다가 가업인 부동산업이 아니라 공학을 공부한다. 훗날 철강업계의 거인이 되어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가장 큰 부를 축적하게 된다. 그의 큰 형 한스는 또 어떠한가. 아버지의 강압에 반항하여 젊은 날의 아버지처럼 미국으로 달아난다. 그는 모짜르트에 필적하는 음악신동으로 알려졌는데, 유아기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뗐고 네 살 때 작곡을 시작한 천재였다. (비트겐슈타인가에는 천재예술가가 워낙 많았다.) 그런 그에게 실업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주문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떠돌이생활을 하다가 자살했다. (그 소식은 1년이 지난 뒤에야 가족에게 전해졌고 그의 아버지가 아래 두 아들을 다른 방식으로 교육시키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손윗 형 파울 또한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에게 맞서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다. 1차 대전 중에 오른팔을 잃은 뒤에도 지독한 연습 끝에 왼팔만으로 능숙한 연주를 하기에 이르렀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바로 파울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한다.) 그의 둘째 형 쿠르트는 가장 재능이 없다고 여겨졌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가업을 이었고 전쟁 중에 부대원들이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자 총으로 자살한다. 그의 셋째 형 루돌프 또한 배우 경력을 쌓다가 한 술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던 <나는 길을 잃었네> 연주를 들으며 청산가리를 삼키고 쓰러진다. 모두 한 성격 하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본성에 철저하게 순응했다고 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본성과 철저하게 투쟁한 점이 달랐다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그의 아버지와 형들처럼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갔으나 그들과는 달리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과 재능을 회의하며 존재이유를 고뇌하고 형들처럼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그 길을 갔다.  

 

그는 항공학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가업을 이어야한다는,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 압박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고 자신의 선택을 못미더워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버트란트 러셀에게 "자기가 철학에 완전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물을 만큼 아직은 자신의 열망을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이었다. 나중에 그는 러셀의 격려를 받은 뒤에야 "자신이 이 세계의 군더더기라는 암시"를 떨칠 수 있었다고 친구 핀센트에게 고백한다. 

 

심리적으로 매우 유약했던 그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그가 삶의 의미로 선택한 논리학과 전쟁이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홀로 논리학을 연구하는데, 그 즈음에는 그의 선생이었던 러셀에게 논리학을 가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러셀이 자신의 새 책에 대한 그의 혹평에 죽고 싶어질 만큼 낙심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자원하여 굳이 최전방으로 배속된다. 하다못해 가구 하나도 본인이 꼼꼼하게 고르거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직접 디자인해 제작하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취향의 인간이 전쟁터의 그 거친 숫컷들 속에서 먹고 자고 싸우며 심지어 최전방의 총알받이가 될 위험을 무릎쓴다. 그 와중에 읽고 쓰고 사유를 멈추지 않았고 그의 논리학의 기초는 그가 처한 상황 -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 게다가 마땅한 대화 상대조차 없어 느끼는 소외감, 우울,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착착 닦여나간다. 그렇게 그는 전쟁을 통해 결정적 변화를 겪게 됐고 오스트리아의 카네기가로 여겨질 만큼 재산가였던 가문의 유산 상속도 거부한 채(그의 가족은 쇤부른 '궁전'에 살았다.) 산골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30대의 나이에 "신이 도착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케임브리지로 입성하여 살아 있는 플라톤 대우를 받았지만, "사람들의 경직성, 부자연스러움, 자기만족, 대학의 환경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면서 교수직을 떠나 러시아에서 노동자로 살고 싶어한다. 하!


그의 삶의 어느 한 궤적만을 놓고 봤다면 나는 그의 본성을 오해했을 것이다. 그를 특정 성격으로 규정지었을 것이다. 그토록 까다롭고 오만한 인간이라니.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는 위대한 지성을 지녔지만 '견딜 수 없는 인간'이었다. 신경질적인 예민함과 결벽증을 지닌 완벽주의자였기에 무자비하리만치 자신과 세상에 엄격하여 불필요하게 적을 만들곤 했다. 동생을 걱정하느라 편할 날이 없는 그의 누이는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불행한 성자보다 행복한 사람을 동생으로 두는 게 더 낫겠습니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까다로운 성품을 의식하지 못한 듯, 이렇게 고백한다. "내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게 반대합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길래?!" 

 

4. 이제껏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이미 규정짓고 단정해버린(심지어 단죄!해버린) 사람들. 내가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 내 그런 행위 또한 내 본성과 관계 있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이 실제 그들이 자신에게서 느끼는 본질과 또 얼마나 괴리가 있을 것인가. 한편 누군가 형용사 몇 개로 나란 인간을 요약할 때마다 반발했던 기억, 스스로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 없는 평가가 주어질 때 내가 느꼈던 모멸감을 떠올려본다. 그 반항심과 모멸감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하듯, 그들도 나를 알지 못했다. 누군가를 온전히 알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그의 말마따나

 

5.

 

 

 

 

 

            우리는 주차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한참 말없이 걷고 있는데 남편이 문득 전날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를 꺼냈다. 고깃집에서 1차 회식이 끝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중이었는데, 어쩌다가 보통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 떠들게 된 것이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 부부는 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라고 말했더니 반응이... 아니, 와이프랑 카페에 왜 가냐고, 가서 뭐 하냐는 거야."

           사람들의 반응이 상상이 돼서 피식 웃었다. 

           "가서 그냥 수다 떤다고 했지. 그랬더니 왜 굳이 카페까지 가서 그것도 아내랑 수다를 떠냐고."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남편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마주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거렸다. 

 

          서로 한 지붕 아래 사는 동거인으로서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함께 살기 '꽤' 괜찮은 이유는 우리들이 같은 종족이어서인 것 같다. 이른바 '내향성' 종족이랄까. 우리가 카페에서 항상 수다를 떠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각자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꺼내들고 따로 놀기 일쑤다. 몇 시간째 말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앉아만 있을 때도 많다. 그건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자기 방에 나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주말을 보내기도 한다.

           언젠가는 친정 엄마가 며칠 와 있는 동안 사위가 발코니 소파와 자기 방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자 자기 때문에 불편해서 그런 거냐고 내게 슬쩍 물으신 적이 있다. 내 짧은 대답에 엄마는 얼른 수긍했다.

           "엄마 때문이 아니야. 당신 낭군님을 떠올려보세요." 

           그렇다. 아버지도 우리와 같은 종족이시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이른바 외향족이어서 "무슨 여자가 집에 붙어 있는 꼴을 못 보겠어."와 "무슨 남자가 저렇게 예민한지, 원."으로 요약되는 필연적 갈등이 있었다. 두분은 예나 지금이나 공사다망하신데, 엄마는 몸이 튼튼해서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냐고 말씀하시고, 아버지는 얼른 일들이 다 정리돼서 조용히 책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J는? 기본적으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부모보다 친구와 놀기를 선호하고 최근에는 도서관보다 놀이터를 더 사랑해마지 않지만, 몇 시간째 방바닥에 드러누워 퍼즐을 끼워맞추고 있거나 소파에 파묻혀 판타지 소설을 읽어대거나 바깥 나들이를 순전히 귀찮다고 거부하는 걸 보면 우리가 같은 종족이란 걸 확인하게 된다. 아, 참 다행이지 않는가.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한다. 셋 중 하나라도 에너지가 바깥으로 향하는 인간이었다면 누군가의 비극적 희생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막스 플랑크의 60회 생일을 기념하는 연설 도중 이렇게 말했다.       

                    

         

 

섬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시끄럽고 북적대는 환경에서 벗어나 고산 지대의 정적에 파묻히고자 하여 과학의 신전을 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고요하고 맑은 대기 속으로 자유롭게 눈길을 주기도 하고, 또 애정의 마음을 가득 지닌 채 명백히 영겁을 견디도록 세워진 것이 틀림없는 평화로운 산의 자태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 "과학 연구의 원리"

 

           내향적인 사람은 반응성이 높은 신경계를 지녀 시끄럽고 북적대는 환경을 못견딘다.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감각적으로 열려 있어서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밀려들어오고 그걸 처리하느라 에너지가 금세 방전되고 마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고반응성, 혹은 민감성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고등생물들에게서 전체 개체수의 15-20%라는 일정 비율로 발견된다. 이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외부 세계의 신호에 다른 구성원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종 전체의 생존을 유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이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방식은 될 수 있으면 외부자극이 차단된 공간에서 타인이 아닌 자신과 머무는 것이다. 

 

            관계망이 확장되고 역할이 늘어나면서 사는 게 참 어려워졌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쉽게 방전되지 않도록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나름 여러가지 터득했다. 특히 요즘처럼 계획대로 삶이 풀리지 않는 데다가 바깥에서 너무 많은 자극이 밀려들면 머릿속에서 빨간 경보등이 계속 켜져 있는 것 같다.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잠 설치기 일쑤다.   

 

             남편은 업무가 많아지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재작년까지는 삶의 큰 낙이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배드민턴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나와 J가 적어도 '맛있는 음식'과 서열이 같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밀린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이 우선시돼야 한다.

  

               나는 내 불면의 밤을 외간 남자와 동행하기로 했다. 섬세하기가 이를 데 없는, 어쩌면 내향성 종족의 가장 최고봉일 것 같은, 이름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아주 길고 지루한 독서를 시작한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세트 - 전4권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민음사

 

 

             덧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는데 몇천 쪽에 이르는 분량만으로도 맞는 말이다. 원래 7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 민음사에서 양장본 네 권 세트로 묶여 완역 출간됐다. 이른바 출간 백주년 기념 세트인데, 러블리한 디자인이 일단 눈을 사로잡지만 100년을 견뎌낸 소설의 힘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2.

               곁에 누운 이의 숨소리도 여간해선 잘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종이 위를 사각거리며 미끄러지는 연필 소리에 마음이 끌린다면, 당신도 나와 비슷한 종족일 것이며 아마 다른 종족이라면 '이거 마마보이 아니야?' 의심의 눈길을 보낼 이 섬세한 작가를 애정하게 될 것이다. (벌써 며칠째 엄마의 굿나잇 키스를 갈망하는 화자를 바라보는 중이다. 내게는 몇 번의 밤이 지나갔는데도 이 소년의 밤은 도통 끝나질 않는다.) 어쩌면 극단적으로 확장된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밑줄 그을 연필로는 2B를 추천하는 바다. 단언컨대 매 페이지마다 흑연이 알맞게 닳는 감각을 맛볼 수 있으며, 은근한 쾌감을 선사받을 것이다. 후훗.

 

             3.

            내가 읽은 성격 심리학 관련 도서 가운데 가장 으뜸은 몇 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콰이어트 Quiet - 10점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인류의 15-20%에 해당할 내향성 종족이 자기 이해와 자아존중감을 높히는 데 꼭 필요한 서적. 혹은 배우자나 자녀가 내향적이어서 고민된다는 외향성 종족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타인을 이해하는 게 자신을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 정귀보(鄭貴寶, 1972~2013)의 인생은 놀랄 만큼 단조로운 것이었다. 나는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모 출판사의 다급한 청탁을 받고 화집을 겸한 평전 집필에 착수했지만,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이력 탓에 고민에 빠졌다.

   정귀보가 태어난 곳은 담양이었지만 그건 정귀보를 설명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당시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운영했는데, 문방구라는 가게는 특별히 영업 수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약간의 부지런함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운영에 큰 문제는 없었다. 부모 모두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심각한 원한을 산 적도 없었고, 특별한 인생관을 가진 적도 없었으며, 삶의 의미 같은 걸 추구한 적도 없었다. 그런 건 그냥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옆의 가게들이 백반집에서 떡볶이집으로, 떡볶이집에서 오락실로 바뀌는 동안, 그들은 유리 진열장 하나 바꾸지 않고 문방구를 지켰다.

    하지만 정귀보가 태어나고 말을 채 배우기도 전에 그의 부모는 서울로 이주했다. 그의 모친 말로는 "벨다른 이유는 읎"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974년 가을의 어느 아침,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이 가게 셔터를 열고 돌아서다가 차양 끝에서 톡, 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빗방울에 얼비친 햇빛이 하도 애처로워서, 문득 이사를 가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서울로,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는데, 뜬금없다는 느낌보다는 아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훗날 정귀보의 모친은 혼자 앉아 뜨개질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 시절이 생각나면, 그 양반이 그날따라 쪼까 바람이 들었제 - 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의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살짝 스쳐갔는데, 그녀 자신은 그걸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p147) 

 

                                                             -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수록된 단편,

                                                                 "우리 모두의 정귀보"의 첫.

                                                                            

 

 

 

      소설을 읽다보면 누군가가 떠올라 한참 상념에 빠져 있곤 한다그건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이거나 오래 전에 연이 끊어진 동네친구나 직장동료이기도 하며, 몇 년 전 어느 좁은 골목길에서 스쳐지나간 모녀처럼 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특정 순간에 떠올랐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이기도 하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이장욱의 단편을 읽고 있는데, 강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강은 오래 전 교복차림으로 창가에 서 있거나 내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개만 몇 번 흔들고는 억지로 페이지를 넘겼다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집중하지 못한 탓이었는지 아주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다만 작가에 대한 애정만 확인한 뒤 책을 덮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이장욱의 세번째 단편집이 출간돼 "우리 모두의 정귀보"를 다시 읽어보았다페이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내게 다가와 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적극적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정귀보"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유일한 공통점이라고는 눈앞에 서 있어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기 어려운,"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얼굴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지 모를 우리 모두의 이웃같달까.

       

         초여름이었던가. 오전 햇살이 교실을 반쯤 비추고 있었다. 일종의 품평회를 앞두고 아이들은 흥분과 기대감에 젖어 조잘거렸다. 강은 어디 있나. 아, 저기 그녀가 교단 앞으로 걸어간다. 수줍어하며 자신의 그림을 이젤에 막 올려놓는다. 그녀의 둥근 어깨와 펑퍼짐한 엉덩이가 주름 하나 안잡히도록 교복을 탱탱하게 늘려놓고 있다.

 

         미술 선생은 팔짱을 낀 채 한참 강의 정물화를 들여다봤다. 키가 크고 마른 몸에 꽤 훈남인 그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한둘이 아니었다. 때는 80년대 말, 그는 여고의 몇 안 되는 남자 선생이었고 미술을 가르쳤으며 대머리에 배불뚝이도 아니었다. 이 모든 유리한 조건들 외에도 그에게는 결정적 한 방이란 게 있었으니 바로 유머감각이었다. 비록 그 유머가 가끔 누군가를 희생자로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가 침묵을 지켰으므로 교실 안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가 심각했기에 덩달아 우리 또한 심각해졌다. 모두의 감탄과 A를 얻어낸 그림조차도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진지한 시선을 받지는 못했다. 

 

         강의 캔버스에는, 꽃이 한가득 꽂힌 화병과 과일 몇 개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 모두 같은 대상을 그렸기에 테크닉이 뛰어난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강의 그림은... 달랐다. '잘' 그린 것도 '못' 그린 것도 그렇다고 '잘못' 그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저건 뭘까. 나는 선생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순전히 미술 선생이 좋아서 미술부에 가입했던 나는 미술부에서 가장 그림을 못그리던 학생이었지만 우리 반의 유일한 미술부 학생으로서 선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던 중이었다.  

 

         강렬한 색채. 단순한 형태. 한눈에도 시원스럽고 과감하게 드러난 정물. 그리고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굵고 짙은 윤곽선.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물과는 별도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 선을 말이다. 심각하게 강의 정물화를 보던 미술 선생이 중얼거렸다.

 

       "이거 진짜 못 그린 그림이거나, 아니면 천재가 그린 건데......"

 

      선생이 씩 웃으며 우리를 둘러봤다. 어떤 아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헉. 쟤가 말로만 들었던 숨겨진 천재? 나는 정색하고 강을 보았다. 단 한번도 평범의 범주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던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쩔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내 평범한 그림이 수치스러웠고 당장 미술부를 탈퇴하고 싶었다. 이런 꼴에 대회를 나간답시고 저녁마다 캔버스 앞에 앉아 있다니... 이윽고 미술 선생은 점수를 매기고 다음을 외쳤다.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강과 선생과 그녀의 그림을 번갈아봤다. 몇 몇 아이들이 웃었고 강은 얼굴이 벌개져서는 서둘러 이젤에서 그림을 내렸다. 강의 점수는 D였다. 그날 애정이란 게 얼마나 빨리 식을 수 있는지 나는 경험했다. 선생 가운데 가장 유머러스했던 미술 선생의 유머가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얼마 안 있어 미술부를 탈퇴했다.

 

      나는 그날 내가 느꼈던 모멸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강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였을까. 글쎄... 그녀의 그림이 그냥 좋아서였는지도, 혹은 그녀의 선이 지닌 그 독특함을 시기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정귀보처럼 "다른 응시생들의 작품에 비해 기본기가 떨어"지지만 "그 어긋남이 이상하게 생동감"을 주고 "기본기의 완성도보다는 향후의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평가를 그날 선생에게서 받았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정귀보처럼 그녀의 모든 평범한 행보가 우연이라는 줄에 엮여 천재 예술가라는 필연적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녀의 실력이 미대에 입학할 만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해 천재가 아닌 걸로 결론내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 D를 준 선생의 심미안을 여전히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창시절 내가 감탄하며 본 그 모든 그림은 잊었으나 (심지어 개인 화랑까지 갖고 있었던 미술선생의 그림조차도 떠오르지 않으나) 강의 그림은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여 년 뒤 남동생의 대학 졸업식장에서 강을 먼 발치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그녀가 굵게 웨이브진 긴 머리를 낭창낭창한 허리까지 드리운 채 불타는 듯한 새빨간 털코트를 입고 화려한 미소를 띠며 서 있어서 순간 내가 그녀를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보고 또 보다가 오래 전 그녀가 그려낸 그 강렬한 색채와 굵고 매력적인 터치를 얼굴에서 발견한 뒤 역시 그날의 그림은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게 아니었다고 다시 한번 확신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 초여름 햇빛을 등지고 선 채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던 그녀의 옆얼굴을 기억해내며 그때처럼 "나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매혹적이었다.

 

        나는 강을 두 번 만났다. 세 번째 만남이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강을 떠올릴 때마다 묘한 기대감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하여 소설 속 '내'가 정귀보를 회고하며 "정귀보의 인생에 대한 기나긴 글"을 쓰기 시작하듯 "보편적 궁극"의 인간이 어떻게 비범한 인생을 시작했는지, 그 결정적 순간을 고교동창생으로서 증언하는,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한다. 

 

 

        "어느 날, 나는 거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오는 정귀보를 보게 될는지는 모른다. 해변에서 놀고 있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우리 모두의 정귀보를 말이다.(p181)" 

 

                

 

 

                                    

기린이 아닌 모든 것 - 8점
이장욱 지음/문학과지성사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녀석들인데 붙여보니 참... 이 어색한 조합이라니.>

 

제목이 마음에 든다. 원제는 Books To Die For. 번역이 절묘하다. 제목과 부제가 이 책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데,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의 리뷰 수록집이다. 791페이지에 육박하는 이런 책은 완독이 불가능할지라도 한번쯤은 훑어봐줘야지 미스터리 팬이라고 할 수 있잖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얼른 집어왔다. 1840년대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시리즈>1850년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부터 2000년대의 할런 코벤과 데니스 루헤인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대표작들이 소개됐다. 아서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 혹은 스티븐 킹처럼 지상으로 내려와 일반 대중들에게 친근해진 이름도 있고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처럼 쫌 하드한 소설 읽네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거의 신격화된 이름도 있다. 그레이엄 그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트루먼 커포티, 페터 회, J. M. 쿳시처럼 순문학 작가로 여겨지는 이들도 목록에 있다. 문학을 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 구별짓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평소 생각해왔지만, 이들을 목차에서 발견했을 때는 의외네, 중얼거렸다. 문학적 편견이 내 안에도 존재했던 것일까.

 

로버트 B. 파커의 <초가을>을 콜린 베이트먼이라는 작가가 리뷰하는데, 글의 첫머리가 이렇다.

 

젊은 시절 당신은 위대한 작가가 되겠다는 환상을 품고 고전을 연구하지만 내 경우엔 <캐치 22> <길 위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결코 그런 책들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적 성취에 대한 찬사를 열망하며 소위 위대한 미국 소설을 쓰고 싶어 하면서도 비록 미국과 멀리 떨어진 북아일랜드에 살고 있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즐겨 읽는 책은 펄프소설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아분열을 겪는다. 펄프소설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학적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당신은 그 장르를 사랑하며, 책장을 계속 넘기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소설들만큼이나 그 작가들도 사랑한다. 단어 수만큼 돈을 받기 때문에 작가들이 돈을 위해 수백만 단어들을 쏟아내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소설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오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일도 없다. 맙소사. 절대 아니다. 섹스와 위스키를 즐길 휴식시간을 포함해 길어봤자 다섯 주면 된다.(p491)

                                                                         - 콜린 베이트먼, 로버트 B. 파커의 <초가을>”

 

 

 

위대한 문학적 성취와 오랜 독서 취향 사이에서 자아분열을 겪는 작가가 베이트먼만은 아닐 것 같다. 작가 박민규가 SF소설로 황순원 문학상 최종심에 올랐을 때 "왜들 이러셔" 이런 말을 했다던데, 한국 문학판도 역사적으로 이런 자아분열을 꽤나 조장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참고로 나는 박민규의 글과 고글 낀 채 긴 머리 휘날리는 프로필 사진을 여성잡지에서 처음 맞닥뜨렸는데, 몇 년 뒤 그는 온갖 문학상을 휩쓸더니 이상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는 예외적 존재인가. 아니면 이런 문단 내 분위기는 그저 내 추측에 불과한 걸까. 말하자면) 대중에게 말초적으로 강력하게 어필하는 미스테리하고도 범우주적이며 남녀상열지사적 요소가 들어가면 인간과 삶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이 책 곳곳에는 사적인 고백이 즐비하다. 그 고백들은,

 

“1981년 여름, 나는 종말이 곧 닥쳐올 것 같던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중앙도서관에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p220) - 에이드리언 매킨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나는 열두 살 소녀의 시체 옆에 서 있다. 소녀는 검시대 위에 누워 있다. 그녀는 강간당했다.(p706) - 마지 오퍼드, J. M. 쿳시의 <추락>”

 

 

이처럼 소설적으로 시작하거나,

 

당신의 아이들과 심약한 이들에게 미리 경고하시길. 이건 고기다. 이건 연골이다. 이건 뼈다. (p425) - 제임스 샐리스, 장 파트리크 망셰트의 <서부 해안의 블루스>”

 

색깔들. (p251) - 제프리 디버, D. 맥도널드의 <케이프 피어>”

 

 

이렇게 시적으로 시작하는 고백도 있다. 공통점은 전율이 일었던 첫 만남과 평생 식지 않는 애정을 털어놓는 것이다. 읽은 리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렇다.

 

잘만 쓰인다면 범죄소설은 자신의 렌즈로 초점을 맞춘 사회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일종의 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진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쿳시의 생각은 내게 설득력을 가졌다. 통역사 개념도 그러했다. 범죄소설에 서식하는 수사관들이 아주 예리한 사회적 통역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711)                                                                

- 마지 오퍼드, J. M. 쿳시의 <추락>”

 

 

 

범죄라는 단어를 빼고, 수사관을 작가로 바꿔도 무방할 듯. 

 

죽이는 책 - 8점
존 코널리 외 엮음, 김용언 옮김/책세상

 

 

:

1. 리뷰 쓰기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좋은 교과서가 될 듯싶다. 실로 다양한 스타일의 리뷰를 맛볼 수 있다.

2. 역자에 따르면 이 리뷰집에 소개된 책이 절반도 아직 번역이 안됐단다고 한다. 흑. 

3. 비교적 당대 미스테리 소설을 즐겨 읽은 독자들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계보를 형성하는지, 어떤 작가로부터 영향을 받고 창작을 시작했는지 추측하고 맞춰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난 그런 깜냥은 못되므로 패쓰.

4. 이 책 한 권으로 올 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 미스테리 리스트 확보. 이렇게 든든할 수가.

5. 국내판, 킨들 에디션, 하드 커버북의 커버 디자인이 다르다. 내 취향은 우측 하드 커버.      

 

 

   

 

 

 

 

 

 

 2004년. 호미곶에서.


 

      사람은 의외로 쉽게 노숙자로 전락한다. 인도 시게오는 그렇게 생각한다. 6년 전, 근무하던 작은 출판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했다. 쉰네 살이었다. 그로부터 4년쯤 지났을 무렵부터 노숙자를 볼 때마다 이상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무리에 끼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불안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p79)

   

                                               -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수록작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번"의 첫.    

 

 

          

 

            마흔을 넘기면서 이런 저런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곤 한다. 고민이라기보다는 거의 망상에 가까운 불안이랄까. 내가 생각의 주인이 아니구나, 싶다. 말하자면 나는 부질없고 의미없는 소음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광장이자 통로이며 때때로 그 소음들이 이미지로 펼쳐지는 것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하는 유일한 관객이다. 결국 너덜너덜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차라리 안 자고 말지, 책이라도 읽는 게 낫다. 그렇게 오전 4시 22분을 맞이했다. 오늘도.

 

            성경을 거의 반만년 만에 꺼내들고 여호수아 1장을 묵상한다. 이런 고백은 친정 엄마가 가장 반가워할 테고 내가 이제껏 드린 그 어떤 생일선물보다 당신을 더 흥분시키시겠지만, "거 봐라, 네가 이제야 철이 드는구나!"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기록으로만 남긴다. 몸에 뿌리박힌 거부반응 같은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내게 신앙은 그런 것이다. 그래, 인정한다. 철도 덜 들어서겠지. 어릴 때 그 누구를 상대로도 제대로 한번 '개겨보지' 못하다가 평생을 사춘기처럼 보내는 건가. 반항도 때가 있는 법인데. 하지만 엄마가 반고리관과 달팽이관까지도 굳은살이 배이도록 강조했듯, 말씀이 동앗줄이었다. 이렇게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할 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은 놀라우리만치 힘을 발휘한다. 소음을 잠재우고 마음을 다독인다.

 

           그래. '형체 없는 불안'이란 말을 습관적으로 쓰곤 한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건 아니다. 그건 언제나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오래 신장병을 앓다 죽은 작은 어머니라든가, 어린 두 아이를 남기고 암으로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라든가, 셋째조카가 태어날 무렵 스쿠버 다이빙 사고로 죽은 큰 사촌 오빠와 대학 졸업과 결혼을 앞두고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동아리 선배라든가, 아니면 뜬금 없는 맥도널드 할머니라든가. 형체 없다,는 말은 현실화 되지 않는다, 를 뜻하는 것이지만, 현실 세계 속 비극은 소설에서처럼 필연적 개연성을 갖고 찾아오는 것 같진 않으므로 현실성을 논해봤자 그건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출구 없이 돌고 돌 뿐이다. 

 

           최근 들어 부쩍 시달리는 불안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그냥 갈지도 모른다는 거다. 누군가가 의미를 찾는 내게 '너는 참 여전하다'는 표정으로 충고하듯 말했다. 삶은 의미가 없다. 산다는 게 의미 있다. 법륜 스님 말마따나, 저기 산에 사는 다람쥐나 토끼가 의미 찾아가며 도토리 줍고 풀 뜯겠냐는 식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도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냥 사는 거지, 뭐.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별 거 있간. 하는 일이 잘 되냐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 누군가에게는 그냥 웃어주거나 그래도 물어보면 잘 놀고 있다고 하거나 마음이 삐딱해질 때면 아이 열심히 키우고 살림 잘 하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대꾸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럴 때마다 드는 열패감은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태어난 거다. 물 한 잔도 의미를 찾아 마셔야 하며 평생 '왜'를 달고 사는 인간으로 빚어졌다. 그러니 그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책임 지느라 오늘도 우왕좌왕하며 살았으며 밤이 깊도록 드라마를 찍어대며 궁상을 떨 밖에.

 

            마음이 그렇게 요동치는 순간, "너와 함께 한다"는 말은 얼마나 듣기 좋은지. 아마 친정엄마가 살기 팍팍한 시절을 견디게 해줬던 것도 그 말이었을 터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세상이 네게 등을 돌려도, 나는 너와 함께 한다. 그 말은 묘하게 내 불안을 형체 없는 것으로 바꿔 버리고서 좀더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가 근래들어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감을 직면하게 한다.      

 

그것은 무력감에 압도되어 뭔가 소중한 것을 방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분노였다. 분노를 통해 스스로 분발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도 없다. 인도 시게오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얕잡아 보지 마라! 그렇게 외치는 대신 후쿠다의 몸을 부축하고 걸어 나갔다. 후쿠다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이제 영영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p146).

 

                  

            소설에서는 인도 시게오의 오랜 불안이 우여곡절 끝에 노숙자가 되고만 친구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친구의 곁을 끝까지 지키면서 자신의 불안을 극복한다. 이 '무력감에 압도되어 소중한 것을 방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수단으로서(p146)' 인도 시게오가 분노를 선택했다면 나는 기도와 독서와 글쓰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라는 말을 나는 오래 아꼈다. 그 말이 풍기는 초연함이 좋아서였다. 이제는 "희망도 절망도 모두 끌어안고", 라는 말을 더 자주 떠올린다. 그 말이 지닌 근기와 성실함이 내게 절실하다.

 

 

 

55세부터 헬로라이프 - 8점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북로드

 

 

 

           덧.

           이런 밤에 동행하기에 그닥 좋지 않은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무대에서 곧 퇴장을 앞두고 있는 조연들, 혹은 단역들의 노곤한 낯빛을 맞닥뜨리는 건, 왠지 내 망상을 심화발전시킬 것 같다. 게다가 작가가 누구인가. 무라카미 가 아니던가. 그에게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말을 기대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또다른 무라카미처럼 양과 쥐와 난쟁이가 춤추고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로의 도피처를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실은 나 역시 불안으로 가득차 있고, 사는 게 고통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이 있고 아직 살아 있지. 맛있는 물도 마실 수 있고. 그리고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다시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 후쿠다, 도움을 받은 건 나란다(p167). 

 

         류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그가 동년배들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인사.

         ˝Hello, (my and your) life.˝            

 

 

 

       조중균(趙衆均)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내가 무딘 탓도 있었겠지만 구내식당 테이블이 6인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다 못 앉으니까 여기 없으면 다른 자리에 있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해란씨는 조중균씨가 오늘만 점심을 안 먹은 것도 아니고 그것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언니, 모르시겠어요?"

     얘는 말할 게 있으면 핵심만 전달하지 뭘 이렇게 떠보듯이 물어? 한달 전 신입으로 함께 입사한 해란씨는 그 나이치고는 신중하고 성실했지만 살가운 동생 느낌은 확실히 없었다. 하기는 안 그래도 해란씨와 난 가까이 하기에 좀 뭣한 관계였다. 석연찮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이였으니까. 입사해서 파악해보니 회사에서는 일단 수습을 거친 다음 해란씨와 나 중에서 선택할 생각인 것 같았다. 구인광고란의 0명은 최소수인 한 명이었던 것이다. 대학원도 다녔고, 성인 단행본은 아니지만 아동서 편집을 맡은 적이 있으니까 일단은 내가 유리했다. 하지만 해란씨도 만만치는 않았다. 뭐랄까, 반짝반짝했다. 며칠 전 퇴근길에서 부장은 해란씨 아르바이트 경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학교 다니면서 별일 다 했지만 해란씨는 정말 고난의 행군이더라고. 요즘 애들 하듯이 어디 인턴, 어디 인턴, 공모전 이런 식으로 채운 것도 아니야. 노동, 말 그대로 노동 현장에서 뛰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영주씨는 말 그대로 버젓한 경력, 응? 정식 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 자리에 왔고 말하자면 팩에 든 고기지. 원래 생산할 때부터 정식 팩에 든 고기. 해란씨는 주먹고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목살 근처 아무 살이나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다보니까 어, 제법 이게 어엿한 상품이 돼 있는 거 말이야. 주먹고기, 내가 비유가 이렇게 좋아. 주먹고기 좋아하나?"

      고기에 비유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주먹고기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

                                                              김금희의 <조중균의 세계>의 첫.    

 

 

 

          

 

           나는 중심이 흔들린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가로수 이파리들이 바람에 떠밀려 가기라도 할 듯 허옇게 뒤집힌 채 흔들리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는 오늘 좀 늦는 모양이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봉두난발한 채 몸을 떠는 바깥 풍경이 감각적으로 와닿지 않을 만큼 카페 안은 쾌적하고 고요했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야구캡을 눌러쓴 젊은 남자가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한 채 볼펜으로 모자 챙을 툭툭툭 건드렸다. 마주앉은 여자가 허리를 쭉 펴고 그를 쳐다봤다.

 

         말하자면, 원자는 텅 빈 잠실 주경기장 같은 거야. 거기 푸른 잔디밭 한가운데 새빨간 사과가 놓여있다고 치자. 그게 원자핵이야. 거대한 원자 안에 아주 작은 원자핵이 있는 거지. 그런데 바깥 트랙에 웬 이상한 녀석이 방향을 바꿔가며 정신사납게 뛰고 있어. 그게 바로 전자야. 원자의 가장 바깥 궤도에 있는 전자를 최외각 전자라고 하는데, 이 숫자가 8개일 때 안정적인 상태가 돼. 이런 걸 옥탯이라고 하는데, 

 

         옥탯이요? 여자가 말꼬리를 물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린 여자애였다. 남자가 모자를 벗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는 다시 썼다.

 

         너, 옥타브 알지? 옥타가 8이란 뜻이거든. 옥탯, 옥타브, 8! 이렇게 기억해. 자, 다시 잠실경기장으로 돌아오자, 우리. 바깥트랙에 '최외각전자'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육상 선수들이 뛰고 있어. 몇 명? 그렇지! 여덟명이 이렇게 뛰는 한, 안정적이야, 불안정적이야? 그래, 안정적이야. 잠실 경기장이 오페라극장이나 전국노래자랑 무대로 바뀌는 일은 없는 거야. 이 말을 교과서적으로 한다면, "다른 물질에 화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거지.

 

        남자는 좋은 선생이었다. 원자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 귀에 착착 감겼다. 고등학교 때 이런 화학선생을 만났다면 좋았겠지. 그는 대기중에 존재하는 비활성기체들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고, 순간 나는 저요, 저요, 하고 외치고 싶어졌다. 비활성기체라고 하면, 나도 좀 아는 게 있었다.

 

       가령, 공기의 0.93%를 차지하는 아르곤(Ar)은 무색, 무미, 무취의 기체로 어떤 물질과도 결합하는 일 없이, 이 젊은 선생의 말을 인용하자면, 8명의 정예대원- 그렇다, 최외각전자!-가 바깥 트랙에서 뛰고 있는 터라 다른 원자에 반응하는 일 없이 대기 중에 홀로 고고하게 떠돈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기체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 있으니, 바로 '노블 기체 Noble gas.' 이른바 독고다이를 주장하는, 남들 보기엔 '니 잘났다' 부류로 묶일만한 녀석들인 것이다.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원소들이랄까.

       

        왜 꼭 같이 행동해야 해요?

 

        나는 오래 전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1993년의 봄은 쌀 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시위로 거리가 시끄러웠다. 난생 처음 최루탄 가스에 상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울며 토하던 봄이었다. 동아리 선배가 치약을 손가락에 짜서 다가오길래 그걸 어떻게 바르냐고, 웃으며 설레발 친 걸 후회하며, 아니 애초부터 동아리 선배를 왜 따라 왔던고, 후회하며 울고 토하던, 그런 봄. 평소 도서관에만 다니던 친구까지 다소간 어정쩡한 자세로 시위에 참가했으니 동기들 대부분이 함께 그 거리에 있었고, 그건 드문 일이었다. (훗날 생각해보니 그렇게 '쪽수'가 많은 시위는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동아리 혹은 과 선배들에게 이끌려 어느새 차도를 점거했다. 이슈가 이슈인 만큼 거리는 시민과 학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수줍게 구호를 따라 외치고 어색하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보였던 건. 

 

        그녀는 시위대에서 비껴 선 채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경계석에 올라 서더니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며칠 전, 과 전체로 움직이자는 과대표의 말에 내심 불만이 있건 없건 침묵을 지켰던 우리와는 다르게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밝힌 건 그애뿐이었다. 

 

         왜 꼭 같이 행동해야 해요?

 

        그애가 우리와는 다른 저쪽에 서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의 애티튜드가 '기록자'도 '관찰자'도 아닌 '구경꾼'의 것으로 해석이 됐고, 내가 피사체로 전락한 듯한 기분에 불쾌해졌다. 어쩌면 그런 그녀의 포즈는 본격적인 90년대를 알리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날 이후로 그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녀와 동류로 묶일 만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그들은 정치적 성향도 삶의 가치관도 종교도 제각각이었다. 그런 그들을 한데 묶는 건 나 홀로 고를 외치며 끝까지 가는 멘탈이랄까. 어떤 여학생은 엄마에게 등짝을, 선생에게 손바닥을 맞아가며 6년간 교복치마를 한땀한땀 줄이기도 하고, 어떤 선생은 애국조회 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며 앉아 있다가 총장에게 찍혀 학교를 떠나기도 한다. 스물 네살의 어떤 캘리포니아 처자는 제지회사로부터 2000년 먹은 삼나무를 지키려고 2년간 나무에서 먹고 자며 1인 시위를 하기도 하고, 눈부신 꽃시절을 맞이한 청년들이 다양한 이유로 입영 대신 감옥행을 선택하기도 하며, 어떤 십대들은 수능 시험날 우리의 꿈이 대학은 아니라며 대학 거부를 선언하기도 한다. 김금희 작가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 속 조중균 씨는 이름만 적어서 내면 점수를 받는 시험을 거부하다가 유급하고 군대 가서 사고를 당하며, 고집스레 오류를 잡아내느라 교정 기한을 넘겨서 직무 유기와 태만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되기도 한다. 그들을 때로는 경외심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다가도 때로는 사람이 저렇게 유두리가 없어서야, 살다 살다 저런 똥고집은 또 첨일쎄, 노친네처럼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건 '지나간 세계(p223)'의 가치를 고단하게 지키거나 다가올 세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자기'라는 세계의 가치를 바깥에 알리거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가치를 지키고자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기꺼이 내놓는 것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뭐랄까, 한없이 에고가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탓에 방어기제를 높히기도 했다. 귀 닫고 눈 감은 채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거리를 두기도 했다. 게다가 강고한 사람보다 어떤 '여지'가 많은 사람에게 더 끌리는 건 내 성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날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특공대 여덟이 원자핵 주변을 철통같이 지켜서 화학적 안정을 이룬 독고다이들. 다행이도 내게는 그런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가 있다. 이제 곧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아서는 예의 심상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안부를 묻겠지. 저 멀리서 풍문으로 맴돌 것 같았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걸 변함없이 신기해하며, 나는 무탈하게 지낸다고 평소처럼 대답할 것이다.

 

        젊은 화학선생이 몇년 전 양자 현미경으로 촬영된 수소 원자의 내부를 노트북으로 찾아 여자애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건 우주의 기원이라고, 남자의 다소간 흥분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저기 그녀가, 그녀의 세계가 이쪽을 향해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8점
정지돈 외 지음/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