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나왔을 때 생각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에 나는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도 마음이 가벼웠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카페와 박물관을 지나 작은 내천을 따라 걸었다. 공터마다 작은 아트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앙증맞은 액세서리와 수제 가죽가방 들, 다소 독특한 컨셉의 의류, 다양한 식자재로 만든 수제쨈과 식혜 들, 봄을 불러들이는 듯한 파스텔톤의 향초들. 띄엄띄엄 놓인 가판대 사이를 사람들이 한가하게 기웃거렸다. 옷을 구경하던 중년 여자가 다른 쪽에서 향초를 구경하는 친구를 호들갑스럽게 손짓하며 불러댔다. 그들은 소매에 날개가 달린 흰색 가오리 긴팔셔츠를 보며 예쁘다고 감탄했다. 그러자 내게 옷을 보여주던 젊은 여주인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원피스를 보고 있었는데, 그 실내복은 여주인이 권했던 것이었다. 나는 옷 자체보다 그녀의 말에 붙들려 있었다. 말을 재치 있게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그 원피스를 '분리수거'하러 나갈 때 입고 나간다고 했다. “넘 예뻐서 다들 깜짝 놀란다니까요.”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가 따라 웃었다. “이거 대박난 옷이에요, 검은색은 이거 하나 남았어요.” 여주인이 다른 이들에게 간 틈에 나는 19,000원짜리 분리수거복을 행거에 그냥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때마침 아이가 나를 찾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조르르 달려와선 내 손을 잡아끌었다. 딴 짓은 이제 그만 하자는 듯 단호한 몸짓이었다. 그러고는 자기만 따라 오면 길을 잃지 않는다면서 자꾸 남서쪽이 어디냐고 물었다. “우리는 남서쪽으로 가야 해. 엄마는 나만 따라 와. 지난번에 엄마 때문에 우리가 엄청 헤맸잖아. 기억나지, 엄마?” 우리는 대충 남북을 가늠한 뒤 느긋하게 걸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북동쪽으로 걷고 있었지만 아이는 남서쪽'으로 맞게 가는 중이라 우겼고, 방위와 상관없이 직관적으로 걷고 있었으나 우리 모두 맞게 가고 있다고 믿었다


            단 둘이 산책하는 건 오랜만이었다다양한 연령대의 커플들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걸었다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모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대기는 산책하기 좋을 만큼 적당히 데워져 있었다.햇빛에 섞여 노르스름하고 어쩐지 달고나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바깥 공기를 쐬면서 아이는 기분이 유쾌해진 듯했다. 표정과 발걸음이 가벼웠다. 더 이상 무표정하게 시간을 견디던 모습이 아니었다. 한 시간 남짓 아이는 굳은 얼굴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앉아 있었다.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선 안내책자를 만지작거리던 아이. 앞을 보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던 아이. "너 원하는 대로 해." 엄마에게서 선택권을 건네받았지만, 사실은 자발적으로 수업을 선택하도록 교묘하게 설득당해 버린 아이. 그때와는 다르게 아이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을 빛내며 주위 풍경을 살폈고 쉴새없이 조잘거렸다. 


           "엄마, 나만 따라 오면 돼." 

           엄마를 리드한다고 믿고 있을 아이의 기분을 생각해봤다. 

           아이의 '남서쪽'에 대해서도.       



 

 

 

 

 

  사건의 발단은 탄내였다.

  뭘 또 잊었구나 싶어 부엌으로 서둘러 가봤지만, 가스레인지는 중간밸브까지 잘 잠겨 있었다. 그렇다. 내가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던 거다. 허탈했다. 내가 아니라 아랫집 아줌마가 한 건 했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J를 이제 잘 시간이라며 침실로 들여보냈다.

 

  오랜만에 J에게 시집을 읽어주고 거실로 나왔더니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어 있었다. 음식 탄 냄새는 여전했다. 아니 거실 가득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세탁실로 뛰다시피 가서 뒷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심한 탄내와 함께 열기가 위로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일찍 잠자리에 든 남편을 서둘러 깨운 뒤 경비실에 전화했다. 아랫층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초인종을 여러차례 눌러봤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경비 아저씨가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받은 번호로 전화를 해봤더니 집전화로는 받질 않았고 휴대폰은 아예 꺼져 있었다. 윗집 아저씨가 계단을 뛰어내려와 상황을 살폈다. 그 집까지 냄새가 올라왔다고 했다. 경비 아저씨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잠깐 기다려보라면서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어느새 잠옷차림 그대로 뛰쳐나온 J가 소방서에 신고하자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내심 주저하고 있었다. 혹시 냄비 하나(?) 심하게(?) 태웠을 뿐인데 일을 크게 키우는 건가. 하지만 J가 바로 휴대폰을 가져와서 119를 눌러 건넸고 남편은 별 망설임도 없이 신속하게 신고했다. 남편은 조금 급박한 목소리로 주소를 두 번이나 말했다. 

 

  우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 입었다. 내가 빅백을 들쳐메자 남편이 그건 왜, 하고 물었다. "내 전재산이야." 가방 안에는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J가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는 걸 보고 그건 왜 갖고 가냐고 물었다. "그거 갖고 가서 먹으려고? 지금?" J는 선물받은 빼빼로 상자들을 슬그머니 내려놓고는 '크리스탈'을 부둥켜 안았다. 잠자리에서 안고 자는 돌고래 인형이었다. "딸, 인형은 놔두고 가자." "안돼! 이건 절대 안돼!"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차키와 휴대폰 하나만 챙겨들었다.

 

  같은 동 주민들은 전부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놀이터 앞에 모여서는 소방차와 사다리차와 구급차가 도착하는 걸 지켜봤다. 소방대장이 윗집을 찾았다. 아랫집이 잠겨 있으니 윗집을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야한다고 했다. 남편이 소방대원들을 따라가자 J가 아빠 어떡하냐고 훌쩍댔다.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크게 불이 난 게 아니잖아." 불이 꺼진 창 밖으로는 불꽃도 보이지 않았고 연기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주민들 대부분이 나와 있으니 불 켜진 집이라고는 우리집 하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우리집을 가리키며 수근거렸다. "불이 난 집이 어디야? 저기 불 켜진 집인가?" 나는 서둘러 아니라고 거기 아랫집이라고 강조했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속닥이듯 말했다. "저기 아랫집에 할머니 혼자 개 키우며 사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있는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서 입안이 말랐다. 다른 아줌마가 말했다. "그 집은 저기 윗집 아닌가요?" "거기도 할머니가 혼자 살고 아래 또 있어." 그러자 다른 아저씨가 강하게 부인했다. "아냐. 저긴 남자 혼자 살아. 내가 몇 번 봤어. 아까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어딜 나가는 것 같더라고."

 

  잠시 뒤 소방대원이 우리집 세탁실 창밖으로 나와 사다리차에 올라탄 뒤 아래층 세탁실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아찔해져서 두눈 질끈 감고 싶었지만, 사실 안경을 안 쓰고 있어서 소방대원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았고 그게 답답해서 눈을 더 크게 떴다. 휴대폰을 꺼내서 카메라를 켜고 줌인을 했다. 옆에서 J가 그걸 보더니 "엄마, 천잰데!" 했다. 얼굴에 웃음이 살짝 번진 게 방금 전 아빠 걱정을 하며 울던 아이가 아니었다. 조금 흥분해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사내 아이 둘이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게 보였다. 사람들은 팔짱을 끼거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은 채 하나같이 시선을 높이 들고 있었다.

 

  과연 우리 아랫집에는 누가 사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이사온 뒤로 아랫층 옆집 사람들은 몇 번 마주쳤는데 바로 아랫집은 거의 마주친 적이 없었다. 지난번 엘리베이터에서 엉겁결에 인사 나눴던 아저씨는 그냥 손님이었을까, 아니면 혼자 산다는 주인 아저씨가 맞는 걸까. 아니면 정말 할머니 혼자 사는 걸까. 지난달 엘리베이터 바닥에 버려져 있던 개똥은 윗집이 아니라 아랫집 개똥이었던 걸까.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소방물탱크차도, 사다리차도, 119 구급차도 모두 돌아갔다. 주민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이 불은 크게 나지 않았고 일사천리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집주인 없이. 경비 아저씨가 얼마 전에 옆단지에서 더 큰 화재가 났다면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신고해서 잘했다고 J를 칭찬했다. J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앞뒤 베란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탄내가 빠지려면 좀 시간이 걸릴거예요. 불이 나면 원래 윗집이 고생하죠." 남편은 소방대장의 말을 전해주며 그 밤에 달려와준 소방대원들을 실제로 보니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소방대원이 신발을 신고 들어와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공손하게 대답했다고도 했다. "네, 네, 신경쓰시지 마세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소방대원들이 다녔던 동선을 따라 걸레질을 네번 했다. 걸레질 네번이 아니라 스무번을 하게 돼도 '걸레질'로 끝나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안도와 감사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탁실 창문만 열어놓은 뒤, 베란다와 거실문을 닫고 식탁에 앉았다. 아랫집은 조용했다. 자신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주인은 어디에 있는걸까.

 

 

 

 

덧.

 

1. 아랫집은 여전히 조용하다. 누가 사는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과일이라도 사서 냄비 조문이라도 가야하나.

 

2. 얼마 전에 지방자치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소방관들이 사비를 털어 특수구조용 장갑을 구입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바로 장갑이 지급됐다고 한다. '면장갑' 스무 켤레. 구조용 장갑은 달랑 두켤레. 소방대원은 24명이었다고 하지. 면장갑으로 뭘 한다지. 구조용 장갑 두 켤레는 제비뽑기로 선택하나. 갑갑하다.

강바닥 긁어낼 돈은 있고, 연말이면 멀쩡한 포석 갈아치울 돈은 있는데 말이지. 사대강 22조, 자원외교 27조, 한국형 전투기 사업 18조. 그런데 보육비 삭감, 급식비 삭감, 도서지원비 삭감. 애 먹이고 공부시킬 돈도 없는데 사업한답시고 빚잔치하게된 집안꼴 같구나.   

 

#대한민국 소방관들의 현실 - 팟빵직설 만화. 신너루

 

   

 

 

 

 

 

 

 

  여동생이 즐겨 찾는 동네 카페는 공간은 아담하지만 창이 크고 넓어서 바깥 풍경이 한눈에 시원스레 들어온다. 그곳 창문에 "우리한테 멋진 게 뭔지 알아?"로 시작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하늘을 보면 문장들이 창공으로 비상하는 것 같다. 다만 필체가 다소곳해서 글자들의 목소리가 '포기'와 '시작'을 선언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양갈래로 머리를 따고 프릴 달린 꽃무늬 원피스에 흰색 목양말과 단화를 신은 여자애가 낯을 붉히며 속삭이는 것 같달까. 사실 내 로망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루트 66를 완주하는 거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꽤 무덤덤하게 저 문장들을 바라본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예전의 나라면 감흥이 전혀 없지 않았을 거다. '다 포기하고 우리 삶을 시작하는 것.' 인생의 변화는 마치 여행 같아서, 감행하는 바로 그 순간 가장 흥분되고 설레는 것 같다.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뒤로는 발꿈치에 잡힌 물집을 터뜨리고 발바닥에 굳은살을 박으며 묵묵히 걸어야 한다. 때로 예기치 못한 일을 겪어가면서, 기대와 전혀 다른 풍경 앞에 망연자실하게 되더라도. 어디서 무얼 하든, 그 주체가 나라면, 그게 내 인생이며, 그렇다면 포기할 것도 다시 시작할 것도 없지...

 

  예전의 내가 툭하면 짐 싸고 떠날 준비를 했다면, 요즘의 나는 부려놓은 짐을 세간살이로 바꾸는 중이다. 단지 내게 가정이 생겨서도 아니고 나이들어서도 아니라, 나란 인간이 지닌 기질적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누구가에게는 '시작'이 미션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마무리'가 미션이다. '떠남'이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정착'이 도전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기름은 간당간당, 미터기는 고장, 현재 주행거리 미지수.

  어쨌든, 완주하자. 

 

 

 

 

 

 

 

 

        둘째 여동생이 커피를 보내줬다. 루왁과 위즐, 그리고 라오스 커피. 명성만 익히 들어온 루왁과 위즐 커피는 안타깝게도 입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의 바디감이라는 표현을 이 두 커피를 마셔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밀도가 굉장히 높았다. 사향 고양이와 사향 족제비의 위장과 장 점막을 천천히 훑고 지나가는 원두콩들을, 어쩔 도리 없이 떠올리고 말았다. 불행히도 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엔 커피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니까. 쿠로의 크고 작은 '맛동산'이 자꾸 떠올랐다. 어쨌거나 찾아보진 않았지만 향과 바디감은 십점 만점에서 십점일 것 같다. 때마침 집을 찾은 지인들에게 커피를 내놓았더니 반응이 뜨거웠다. 나는 오히려 라오스 커피를 더 즐겨 마셨다. 여동생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서 우유와 설탕을 넣어 달달하게 만들었다. 온몸이 눅진하게 풀릴 만큼 달았다.

 

 

 

 

 

 

       "인도네시아 쿨린 커피도 맛이 재미 있어.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후배가 커피믹스를 갖다줬는데 달달해. 종류는 넛트커피, 초코, 바닐라, 맛은 다 비슷한데 하나가 좀..."  


       지난번 환갑 여행때 둘째 여동생이 고맙게도 믹스 커피를 잔뜩 싸들고 왔다. 나는 '맛이 재미 있다'는 여동생의 말이 재미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개중에 맛이 좀... 희한한 게 있었다. 여동생의 말처럼 입안이 싸한 게 양치질한 느낌이었다. 첫 맛은 달달한데 마시고 나면 민트차를 마시고 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완벽한 입가심용 커피랄까. 

 

        며칠 전에 <냉장고를 부탁해>를 봤는데, 이찬오 쉐프가 맛이 신나고 격렬해서 범퍼카를 탄 것 같다고 했다. 그의 표정과 '맛이 신나고 격렬하다'는 표현이 재미나다고 생각했다.

 

                    나도 앞으로 밥상 앞에서 이렇게 말해볼까. 음... 뭔가로 들끓는 맛이군 (MSG). 고루한 백면서생이 웅크리고 있군(NO MSG). 훗.  

 

 

 

 

 

      

  

여동생이 더불어 보내준 쿠키와 파이.  

가까이 살았다면 넌 나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살찌웠을 거야, 동생.

                 그러니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사는 건 하늘의 뜻.  

 

 

 

 

 

 

         버지니아 울프 사진을 배경으로 한, 

         저 구깃구깃 낡은 메모지의 정체는?

 

         얼마 전에 J에게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점을 물었다. 그렇다. 나는 이상한 질문으로 아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엄마. 후훗.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J 왈,

          "외로움은... 어딘가에 고립된 거? 방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고독은... 기분이 가라앉아. 근데 마음이 전환되는 것 같은 거야. 우울한 것도 같은데, 진짜 마음 깊이 상쾌한 느낌이 드는 거지."

          와 -  

          나는 포스트잇을 찾아 허둥댔다. 그리고 방금 들은 멋진 말들을 사진 속, 저 날아가는 악필로 휘갈겨썼다. 일필휘지가 아니라 악필휘지랄까. 그러고는 메모지를 잘 접어서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컴퓨터 앞에 앉으면 간만에 육아일기를 써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고는, 잊었다. 

           며칠 뒤 세탁기 앞에서 청바지 호주머니를 살펴보다가 '기적적으로' 메모지를 발견했다. 며칠 전에 했던 똑같은 결심을 다시 하며 입고 있던 잠옷 바지 호주머니에 넣어뒀다. 다음날 아침, 바지를 갈아 입다가 '우연히'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메모지를 발견. 어머, 이걸 잊고 있었네! 갈아 입은 면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뒀다. 이번에야말로! 결심을다지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저 꼴이 된 거다. 

        

         어쩌다가 육아일기가 구사일생한 메모지에 대한 기록이 돼 버렸네. ㅠ.ㅠ 


         덧.

          1. "제 글씨가 원래 저 모양 저 꼴은 아닙니닷!" 

          천재는 악필이라고 반평생 내 글씨를 변명하고 포장해오며, 각고의 노력 끝에 꽤 괜찮은 꼴을 갖추게 됐으나 가끔 피치못할 사정으로 요요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소심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언급해둔다. ㅠ.ㅠ;;;; 

          2. 버지니아 울프 배경 사진은 요즘 내가 갈아 탄 수첩을 찍은 것이다. 민음사에서 할인판매하던 걸 작년 북축제때 사고는 올해 북축제가 끝나서야 드디어 개봉!

            나는야, 아직도 예쁜 문구류를 보면 설레는 녀자...  >ㅁ<       

 

 

어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새로운 뉴스를 들었다.

 

 

 

 

승희 학생이 배가 가라앉기 전 선미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세월호 후방에서 트윈 엔진이 일으키는 물보라가 한쪽에서만 일고 있었다는 것. 전문항해사, 엔진설비 전문가, 교수 등의 전문가들이 이건 엔진 하나가 꺼져 있는 경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미 사고가 일어나기 20분 전에 엔진 하나가 멈춰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엔진 이상에 대한 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배는 병풍도 옆에서 대회전을 시도했으며 결국 뒤집혔다. 법정에서 항해사, 기관장, 조타수 세 명 모두 엔진 두 개가 정상 작동했다고 진술했고 정부도 이에 부합하는 항적도를 제출했다. (AIS 데이터에는 다수의 규칙적인 누락구간이 존재한다. ?) 게다가 정부는 한쪽 엔진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정상속도로 배가 운행했다고 발표했다. 김어준은 질문한다. 선원들이 뭘 믿고 그렇게 거짓진술을 했을까? 자신들의 말을 뒷받침할 자료가 나올 거라 알지 않고서 하나같이 입을 모아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엔진 하나를 일부러 껐다면 왜? 1년이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의문점은 늘어나고 질문은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왜? 혼란스럽다. 

 

* 관련 내용은 아래 동영상, 파파이스 58. 1시간 39분부터

* 아래 동영상 내용이 잘 요약된 블로그. 클릭! 

* 파파이스에서 제기된 엔진 정지 문제에 관한 다른 입장. 클릭!

 

 

 

 

                                   

      잊지 않기 위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읽고 읽고 또 읽는 일. 그리고 몇 대목을 옮겨적어본다. 

 

1. <문학동네> 계간지 여름호에 실린, 백지은 평론가의 <수평선이 보인다>는 글을 읽다가 세월호 사건을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연결시킨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발췌했다. 봉준호 감독의 저 인터뷰 내용은 언젠가 읽어본 듯도 한데, 그때는 '(사회적) 재앙의 개인화'라는 단어가 이런 식으로 마음에 새겨질 거라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어도 정부와 언론 심지어 시민마저 이내 관심을 거두거나 엉뚱한 데로 관심을 돌리고(바이러스 타령을 한다), 괴물을 끝까지 추격하고 처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는 군대, 경찰, 기자도 아니고 모험가, 역사가, 작가도 아닌 오직 한 가족, 피해자의 유가족뿐이었다. 말하자면 <괴물>은 갑작스런 괴물의 등장으로, 아니 실은 미군의 독극물 방류 혹은 그런 소행이 가능했던 한미관계의 오랜 파행과, 그로 인해 서서히 자라난 괴물의 존재를 오랫동안 둔하게못 알아차린 사람들, 또 눈앞에 괴물이 나타났어도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대처, 조사의 직무를 유기한 국가의 무책임 등 숱한 적폐의 결과, 어느 날 삶이 부서져버린 유가족의 이야기다.

 

영화가 상영되었던 2006년의 관객들보다 오히려 요즘,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인들에게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공교로운데, 영화의 이런 면모들과 관련하여 당시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 사람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고, 도움은커녕 방해만 받지만 아무도 시스템 탓 안 하고 자기들끼리 보듬으며 재앙을 개인화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예를 들어 대구지하철참사도 구조적 모순을 탓하기보다 내가 돈 잘 벌었으면, 대학 입학했을 때 차 사줬으면, 안 당했을 변을 당했다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 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재앙은 훨씬 더 구조적인 것에서 온 건데, <괴물>의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눈먼 자들의 국가 - 10점
김애란 외 지음/문학동네

 

 

2. 이것은 세월호라는 배가 불운하게 침몰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는 박민규 작가의 문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 같지만, 근 한달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제 세월호라는 배에 우리 모두 올라타 있고 배가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는데, 정작 이 배를 움직이는 선장과 선원들은 언제라도 가장 먼저 배를 떠나 젖은 돈이나 말리고 있을 것 같다는...     

 

 

침몰해가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해경 123정은 기울어가는 배 주위를 돌기만 하다가 딱 한 번 접안을 하고 그들을 옮겨태웠다. 승객들의 출입구가 있는 선미로는 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어 몰랐다고는 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원천적으로 통제된 선수 쪽 조타실이었다. 아니, 그 마저도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선원임을 알았고, 그들은 족집게처럼 476명이 타고 있는 배에서 선원들만 빼내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접안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또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장과 선원들, 또 해경은 탈출하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배를 빠져나온 승객들만이 가까스로 헬기와 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구조가 아닌 탈출이었다. 해경은 끝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의자로 창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외침도 외면했다. 그리고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p48)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p57)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3. 손은 못잡아줄지언정 유가족들에게 험한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가족을 그렇게 떠나보냈는데, 적어도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어느 시대건 '사고'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불운이라는 말로 '사회적 재앙을 개인화'하지 않고 진실을 찾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 대한국민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정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돼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의 안정과 자유와 행복을 이미 잃었다. 그런 그들이 주저앉지 않고 여전히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서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 세월호 피해자 합동분향소에서 엄마가 딸에게.

 

 

 

잊지 않겠습니다
시를 잘 써 상까지 받은 승희에게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은 승희에게.

세월호가 침몰하고 9개월이 다 돼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 우리 딸에게 편지를 쓰는구나. 너무나 슬퍼서 사진조차 보지 않으려 하며 살았는데, 세월은 흘러 벌써 2015년이 됐어. 아직도 우리 딸이 엄마 곁에 없다는 게 꿈만 같아.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어.

 

늘 사랑과 감사로 가득했고 고마움을 잘 아는 예쁘고 착한 딸이었는데, 왜 이리 엄마 곁을 빨리 떠나 버렸는지…. 엄마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하루하루 고통이구나. 마지막까지 꼭 구조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던 딸이 이제는 이 세상에, 이 하늘 아래 없다는 게 너무나 슬퍼서 매일 눈물이 멈춰지지 않아. 우리 딸이 없는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만 돌아가는데….

 

엄마는 4월16일 마지막 순간에 배 안에서 구명조끼 입고 복도에 앉아 있는 우리 딸의 모습이 너무 슬퍼서 이 세상이 원망스럽고 용서가 되지 않는구나. 얼마나 무섭고 또 무서웠을까?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사랑하는 딸, 승희야. 비록 17년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우리 딸과 함께했던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어. 너무나 행복했단다. 우리 딸과 같이했던 그 소중한 시간 꼭 가슴에 묻고 기억하며 살게. 우리 딸도 모든 것 다 잊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친구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렴. 엄마, 아빠는 영원히 우리 예쁜 승희를 기억하고 사랑한단다.

 

꿈속에서라도 널 보고 싶은 엄마가.

 


신승희양은

 

지난해 4월12일 엄마와 아빠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결혼 20주년(4월6일)을 맞아 단둘이 간 1박2일 여행이었다. 비용은 막내딸인 승희가 부담했다. 때마침 장학금을 타게 되자 엄마, 아빠에게 돈을 주며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단원고 2학년 3반 신승희(17)양이 엄마, 아빠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며칠 뒤 수학여행을 떠난 승희는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거실 소파 위에는 승희가 몰래 두고 간 편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쓴 이 편지에는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사랑해’라고 쓰여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언니를 위해 ‘언니 계속 자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승희는 4월22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1월11일은 승희의 생일이다.

 

승희는 수학여행을 가기 보름 전, 천안함 사건을 주제로 <항해>라는 시를 써서 학교에서 우수상을 탔다.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리’로 끝나는 짧은 시였다. 승희는 이 시에 나오는 문구처럼, 지금 친구들과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고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

 

 

        

    원래 의도한 건 이런 모양은 아니었다. 딱 떨어진, 각 잡힌, 사각 김밥이었다. 얘네들에게는, 어딘가 모르게 내 성격이 묻어난달까. 참 허술해보인다. 분명히 시키는 대로 '초간단 사각 김밥틀'에 넣어 만들었는데, 손으로 조물딱거린 백퍼 수제김밥의 느낌이 난다. 김밥틀에 가둬놓고 누름틀로 있는 힘껏 눌러댔는데도 몰개성화의 덫에 빠지지 않은 채 하나같이 다른 모습이다. 자신을 반듯하고 단정한 틀 안에 가두려는 손길에도 아랑곳없이 외쳐대는 것이지. "비뚫어질테다!"  

   그나마 내 김밥을 먹기 전에 한번쯤 눈여겨보게 만들어준 건 딸아이다. 김과 크랜베리를 이용해서 녀석들을 다양한 표정으로 인격화시켰다. 그런데 아랫줄 쌍둥이는 도무지 그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쟤네들의 정체는 무엇이냐 물었더니, J 왈, 

 

   "돌하루방인데..." 

 

   그러고보니 이스터 섬에 있다는 모아이 석상도 떠오르네.  

 

   요즘 기상천외하게 장식한 엄마표/ 아빠표 도시락이 유행이라지. 호기심에 3,250원에 사각 김밥틀을 공구했다. 대만족한 이유는, 순전히 J가 즐거워하며 먹어줘서다. 내가 손댄(?) 음식에 J가 환호성을 지른 게 얼마만인지. 그것만으로도 저 찌그러진 사각김밥들이 사랑스러워졌다.       

 

 

 

 

 

 

 

 

 

 

       

오늘은 대체로 맑고 따뜻하겠음. 인천은 나쁨’, 그 밖의 권역은 보통으로 예상됨. 다만, 수도권은 밤에 일시적으로 나쁨수준의 농도가 나타날 수 있음.

 

* 황사마스크: 필요없음

* 야외활동: 지장없음

* 학교: 실외수업 지장없음

* 차량운행: 지장없음

* 환기: 지장없음

 

    

   

이것이 정녕 '대체로 맑음?'

 

지난 세기에는 판타스틱하고도 그로테스크하고 묵시록적이기까지 했던 장면들이 별다른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일상이 되어간다.

 

다음세기, 더 판타스틱하고 그로테스크하고 묵시록적인 일이 벌어진다해도 그럭저럭 살아가겠구나, 우린...

 

도시의 오후.

노인의 백태 낀 눈동자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다 그나마 맑고 푸른 기운을 발견.

뭉툭하게 잘린 가지 끝마다 말랑말랑한 잎이 돋고 있다.

건투를 빈다.

 

 

 

 

 

그게 잊혀질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어딘가 깊숙이 밀어넣어두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그게 가능한 죽음이 있고, 

불가한 죽음이 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고,

불가한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해야 버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하지 말아야 버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게 잊혀질 수 있는 일인가.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을 걷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영위해오던 

지난 일년간의 시간이 

나는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광장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광장에는 자신이 잊지 않았다는 걸, 앞으로도 잊지 않겠다는 걸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바닥에 무릎을 끓고 걸개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광장 끄트머리에는 '아이의 빈방'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국화와 카메라를 들고 서성였다.  <아버지의 눈물>이라는 고개 숙인 파란색 조각상 주위를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갑자기 광장 앞쪽에서 심상치않은 함성이 들렸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기 시작했다.  광장 주변에서 조용히 애도하던 사람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J가 놀라서 소리쳤다. 

 

"왜 경찰들이 저런 걸 사람들한테 쏴? 왜?" 

 

화가 난 아이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성토하기 시작했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 나왔는데, 경찰들이 세월호 유가족들한테 막 뭐 뿌리고 있어. 완전 어이없지!"

 

경찰은 물대포까지 동원했다.

 

우리는 아이 손을 잡고 광장 바깥으로 향했다. 

 

저기 '사람들'이 아직 있는데,

그들을 두고 바깥으로 나와버리는 것 같아

무참한 기분이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머뭇거리는 내게 아이가 짜증내듯 말했다. 

 

"사진으로 뭘 할 수 있어, 엄마! 어차피 10년쯤 지나면 다 버려질 텐데."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필 코앞에 두고 중남미 순방을 떠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

묻고 싶다.

 

여기 사람들을 두고 바깥으로 나가버린,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도 슬프고 화가 납니까.

당신도 죄의식을 느낍니까.

당신도,

부끄럽습니까?

 

 

 

 

  

 

 

 

J가 묻자마자 남편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가슴에 담고 있었다는 듯.

 

, 웃고 말았다.

 

농담이지? 하고 물었더니 진심이란다.

 

표정을 보니 진지했다.

 

내 웃음이 미안하고 무안해졌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비록 썬데이 크리스챤에 불과하지만,

 

내 기독교적 세계관에도 들어맞았다.

 

게다가 최근 몇 년 간 절절하게 경험한 바 아닌가.

 

그래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아이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웃기지?

 

우리집 가훈,

 

 

"진인사대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