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나왔을 때 생각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에 나는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도 마음이 가벼웠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카페와 박물관을 지나 작은 내천을 따라 걸었다. 공터마다 작은 아트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앙증맞은 액세서리와 수제 가죽가방 들, 다소 독특한 컨셉의 의류, 다양한 식자재로 만든 수제쨈과 식혜 들, 봄을 불러들이는 듯한 파스텔톤의 향초들. 띄엄띄엄 놓인 가판대 사이를 사람들이 한가하게 기웃거렸다. 옷을 구경하던 중년 여자가 다른 쪽에서 향초를 구경하는 친구를 호들갑스럽게 손짓하며 불러댔다. 그들은 소매에 날개가 달린 흰색 가오리 긴팔셔츠를 보며 예쁘다고 감탄했다. 그러자 내게 옷을 보여주던 젊은 여주인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원피스를 보고 있었는데, 그 실내복은 여주인이 권했던 것이었다. 나는 옷 자체보다 그녀의 말에 붙들려 있었다. 말을 재치 있게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그 원피스를 '분리수거'하러 나갈 때 입고 나간다고 했다. “넘 예뻐서 다들 깜짝 놀란다니까요.”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가 따라 웃었다. “이거 대박난 옷이에요, 검은색은 이거 하나 남았어요.” 여주인이 다른 이들에게 간 틈에 나는 19,000원짜리 분리수거복을 행거에 그냥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때마침 아이가 나를 찾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조르르 달려와선 내 손을 잡아끌었다. 딴 짓은 이제 그만 하자는 듯 단호한 몸짓이었다. 그러고는 자기만 따라 오면 길을 잃지 않는다면서 자꾸 남서쪽이 어디냐고 물었다. “우리는 남서쪽으로 가야 해. 엄마는 나만 따라 와. 지난번에 엄마 때문에 우리가 엄청 헤맸잖아. 기억나지, 엄마?” 우리는 대충 남북을 가늠한 뒤 느긋하게 걸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북동쪽으로 걷고 있었지만 아이는 남서쪽'으로 맞게 가는 중이라 우겼고, 방위와 상관없이 직관적으로 걷고 있었으나 우리 모두 맞게 가고 있다고 믿었다


            단 둘이 산책하는 건 오랜만이었다다양한 연령대의 커플들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걸었다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모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대기는 산책하기 좋을 만큼 적당히 데워져 있었다.햇빛에 섞여 노르스름하고 어쩐지 달고나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바깥 공기를 쐬면서 아이는 기분이 유쾌해진 듯했다. 표정과 발걸음이 가벼웠다. 더 이상 무표정하게 시간을 견디던 모습이 아니었다. 한 시간 남짓 아이는 굳은 얼굴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앉아 있었다.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선 안내책자를 만지작거리던 아이. 앞을 보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던 아이. "너 원하는 대로 해." 엄마에게서 선택권을 건네받았지만, 사실은 자발적으로 수업을 선택하도록 교묘하게 설득당해 버린 아이. 그때와는 다르게 아이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을 빛내며 주위 풍경을 살폈고 쉴새없이 조잘거렸다. 


           "엄마, 나만 따라 오면 돼." 

           엄마를 리드한다고 믿고 있을 아이의 기분을 생각해봤다. 

           아이의 '남서쪽'에 대해서도.       





독감 백신이 백신 가운데 가장 효과가 떨어진다지. 알려져 있다시피, 독감 바이러스가 계속 변하고 있는 데다가 그해 유행할 균주를 추측하여 백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독감 백신을 맞히지 않았다

 

올 겨울 나는 그걸 조금 후회했는데, 아이가 난생 처음으로 독감에 걸렸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독감이 유난을 떨었다. 아이네 반의 경우에는 1/3이 독감을 앓았다. 아이가 다행히 크게 앓지는 않았지만아이도 나도 일주일 간 집안에 격리되다시피 했기에 하필 그 기간에 잡혀 있던 중요한 일정들이 모두 취소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건 승률이 매우 낮은 게임이 아닐까 여전히 생각했다.

 

<스켑틱> 코리아판 8권에 실린 독감 백신에 대한 컬럼을 읽고서 나는 다른 관점으로 독감 예방 접종을 바라보게 됐다. 감염성 질환 전문가 마크 크리슬립은 독감 백신에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에 맞서 다른 주장을 펼친다

 

"인구 집단이 받는 혜택은 백신을 맞는 개인에 의존한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공동체 안에서 독감의 전파 속도를 낮추어 집단 면역성을 높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유아, 면역계가 약화된 사람, 임산부, 노인을 위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할머니를 위해 독감 백신을 맞으세요."

 

그러게, 올 겨울에는 나도 독감 백신을 맞아볼까

 

인간은, 고립된 섬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다. 내가 직접적인 수혜자가 아니므로, 또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므로 무심코 내려지는, 나라는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개인의 결정들이 결국 어떻게든 바깥세상에 영향을 준다. 동심원을 그리며 점점 크게 퍼져나가는 파장. 그건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지

몇 개월째 그걸 사뭇 초현실적힌 형태로 목도하는 것 같다.


             




게일 레빈의 평전, <에드워드 호퍼: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를 읽고 있다. 뒤늦게 두번째 시도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 오래 전, 호퍼의 그림에 처음으로 매혹당한 즈음에 읽다 지쳐 덮은 모양이다.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평전이니, 앞으로도 몇 번 더 벌어질 일일지도...

  

 

나이트호크(1942). 호퍼는 이 작품을 통해 이른바 미국식 리얼리티를 창출해냈다. 그가 이 그림에 몰두하는 동안 부부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조는 지인에게 고백한다.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 누군가의 손을 빌어 남겨진 소크라테스의 어록 탓이다. 그녀로서는 아무리 억울해도 자신을 변호할 길이 없다.

호퍼는 아내 조를 '나의 크산티페'라고 불렀다. 조는 크산티페와는 달리 자신을 철저하게 변호했다. 미래의 독자를 다분히 의식해 쓴 일기를 남긴 것이다. 이들 부부의 경우에는 호퍼가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변호할 수 없다. 심지어 그녀를 비꼬아 그린 듯한 연필스케치까지 남긴 마당에. 단지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 시대배경과 그의 기질, 그가 남긴 인터뷰와 편지, 그리고 그의 작품 등으로 그의 심리상태를 짐작할 따름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재독을 통해 내게 강렬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에드워드 호퍼가 아닌 조 호퍼다. 이 책이 조의 디테일한 일기를 밑천 삼아 쓰여진 탓도 있지만, 내 자신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은 기혼여성이라는 스텐스를 내내 의식한 채 평전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 며칠 영드 <닥터 포스터>에 빠져 있어서인지도.

 

 

방영 천만명의 시청자수를 기록했다는데 왠지 그 중 9백만은 기혼여성일 것 같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앞두고서 여주의 행보(아마 복수의 방식)에 대해 댓글이 구백만개나 달렸단다.

 

각설하고, 호퍼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지극해도 이번에는 조에게로 시선이 간다.

예술가적 자의식과 아내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다. 몇몇 고백은 그로부터 반세기나 훌쩍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일기장에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채 쓰여질 것 같다.

 

- 매 끼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일은 나를 지독한 하이에나로 만들었다.


- 한때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고 다른 길은 생각지도 않았는데지금은 나 자신이 부엌데기일 뿐이고 어디에도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 부엌데기의 책임과 다른 생활은 없이 그저 피로와 심술 그리고 성가심으로 가득 차 있다.

 


1939<독립적 여성>이란 잡지에 "당신과 당신의 자동차"란 글이 실렸다. 제럴딘 사테인은 "자동차 운전의 성공에서 오는 힘에 대한 자의식"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달걀 거품기를 다루는 것보다 무한하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서글프다. 하다못해 오븐도 아닌 달걀 거품기라니...)

 

 

Jo in Wyoming(1946)

 

당시 조에게도 운전을 마스터하는 게 중차대한 미션이었다. 어디든 혼자 힘으로 갈 수 있다는 건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을 뜻했다. 그리고 "남편의 요구, 취향, 두려움으로부터 제한 받지" 않는 길이기도 했다. 조의 운전으로 빚어진 부부싸움이 '육탄전'(맙소사!)으로까지 빈번하게 확대됐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남자와 생물학적, 심리학적 동등성을 달성"하려 했던 한 여성의 욕망과 관계/힘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남성의 불안이 운전대를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던 것이다.

 

조는 1944년도의 일기에서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충동"으로 세가지를 뽑았다.

"미술을 통한 표현, 성 그리고 운전."

 

특히 운전과 미술에 대한 '충동'은 갈등의 주된 테마였다. 조는 호퍼가 자신의 미술 본능을 미묘한 방식으로 죽이는 것처럼 여겼다. 어느 날에는 호퍼가 미술관 직원에게 자신을 화가가 아니라 자기 아내로만 소개했다고 조는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 속에서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부엌데기처럼 여겨져 크게 화내다가도 그런 감정발작에 죄의식을 느끼고는 그래도 "내 사랑하는 에디는 집안일을 함께해 주잖아" 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리고 아무도 보러 오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면박에도 굴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작품들을 갤러리로 보내곤 한다. 침체기에 빠져 까칠해진 그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날이면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 인간이라고 일기장에 성토하다가도 그가 성공적으로 다시 작업에 임하면 깊이 안도한다. 사람들을 꺼리는 남편 대신 그의 작품을 평단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캔버스 앞에서 그가 요구하는 다양한 포즈를 적극적으로 취하며, 그가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걸 언제나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머물 곳이 앉을 데도 없는 부엌과 침실 뿐이라면서 한탄한다.

 

평전에서 언급된 조의 일기를 읽다 보면 '전쟁 같은 사랑'이란 말이 불쑥 떠오르곤 했다. 격렬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평생 반복되는 것 같았다. 여느 부부 같으면 십년이면 적당히 포기하고 살 텐데, 이들 부부는 각자 동일하게 지닌 예술가적 자의식과 욕망 때문인지 끝도 없이 서로를 밀치고 끌어당긴다. , 아직까지 읽은 바로는 그렇다. 여하튼,

 


   호퍼 그림 속에 빈번하게 드러나는 '고독'과 '단절'의 이미지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 운전대와 방 하나만 내줬다면,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방향과 표정의 온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철로 변 호텔, 1952, 캔버스에 유화

 

 

뉴욕의 방, 1932, 캔버스에 유화

 

 철학으로의 소풍,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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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란 인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쓰릴러도 그 결말을 확인하고 봐야 직성이 풀린다. 평전의 마지막을, 호퍼의 마지막 그림과 그녀의 마지막 일기를 미리 훔쳐 봤다.

 

 

두 명의 희극배우, 1965, 캔버스에 유채

 

호퍼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두 명의 희극배우>에서 자신과 함께 조를 피에로로 등장시킴으로써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와 영예를 나누는 동반자로서의 위치를 그녀가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조는 여전히 정물화를 그렸다. 그리고 호퍼가 죽은 뒤 채 10개월도 되기 전에 84세의 나이로 죽었다. 내가 건너 뛴 어느 페이지에선가 그들은 평온해졌나보다.

 

그녀는 이렇게 일기의 "마지막 장을 접는다."

 

나는 내 자식들(조의 작품들)로 가득 찬 9제곱미터의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거기에 내 삶의 기록이 있다. 나는 여기저기서 편안함을 느끼고, 다시 살고, 작은 새끼들과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많은 여성들이 미술보다는 사람들과 삶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걸 배웠다. 그들은 두 가지를 다 가져야 한다.

에디가 떠나면 나는 지구상에 혼자다. 그는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우리는 가까운 친구도 없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우리의 작은 집이 천국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모든 단순한 것들.

저 조용한 동반자는 잠자러 갔다. 그는 내가 글 쓰는 걸 미워하거나 내가 말하는 것에 참견하지 않는다.


2.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애니, 영화, 광고 속 장면으로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3. 사우디 정부는 아직도 여성들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9월호를 읽었다.

 

 

 

2015년에는 캘리포니아오징어의 알이 멀리 북쪽 알래스카 주에서도 발견됐다고 한다. 아열대 해양 동물인 개복치와 조개낙지와 청새리상어가 태평양으로 이동했고, 중앙아메리카의 바다뱀들이 LA 근처 해변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따뜻한 물을 찾아온 귀상어들이 캘리포니아주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영화 언더 워터(The Shallows)의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멕시코 해안에서 서핑을 하다가 난데없이 상어와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Surfin' USA가 명랑하게 울려퍼지는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단지 생태계 지도만이 바뀐 건 아니다. 크릴새우가 급격하게 줄어든 바람에 최소 10만 마리의 작은 아메리카바다쇠오리와 수십만 마리의 바다오리가 굶어 죽었다.

 

 

 

북동 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기이하게 상승한 건 2013년부터이다. '블롭'이라 새로 명명된 이 수역에서는 약 2년간 생태계가 교란됐다. 많은 기상학자와 해상학자들이 기후 변화로 닥칠 미래의 바다를 이곳에서 예견했다. 따뜻한 기온으로 어류의 신진대사가 촉진돼어 식욕이 왕성해졌다. 먹잇감은 감소됐다. 먹이사슬 위쪽을 차지한 조류와 해양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고래와 해달 같은 동물들도 떼거지로 기이한 죽음을 맞이했다. 수심 깊이까지 높아진 수온으로 독성 해조류가 창궐했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신경독소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학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불과 한달 전 포털 한 켠을 소심하게 장식했던 뉴스 한토막이 떠올랐다. 한강을 녹차라떼로 둔갑시킨 유해 남조류는 내시와 사랑에 빠진 어린 왕의 순정한 눈빛 만큼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채 수심 깊이 가라앉았다. 혹독한 무더위가 몇 주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았던 여름이었다. 녀석은 악랄한 고리대금업자처럼 내 멱살을 잡고 끌고 다니다가 전기세 고지서 한 장 던져놓고 떠나갔다.

 

2016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더위는 이제 물러갔다. 2013년 난데없이 시작된 북동태평양의 블롭 또한 강력한 엘니뇨로 약화되었다. 뉴욕 양키스, 요기 베라가 말했다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상한 나날은 이제 끝난 듯 보이나, 이제 막 시리즈를 기세좋게 열어젖힌 공포영화의 엔딩처럼 찝찝한 뒷맛을 남겼다. 후속편은 언제나 강도가 더 센 장면들과 함께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상기온으로 나는 고작 몇 주 고생했을 뿐인데, 북동태평양의 해양생물들은 무려 2년이나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을 읽기 시작했다. 



영화 <Into the Forest>는 종말에 가까운 세상을 그려낸다. 주인공은 두 자매. 언니의 오디션과 여동생의 대학입학시험을 며칠 앞두고 미 서부지역에서 원인 모를 단전사태가 벌어진다. 곧 미국전역에서 발전소가 멈춘다. 모든 통신망이 단절된다. 유일한 이동수단은 자전거밖에 없다. 물자를 공급받지 못한 사람들은 약탈을 일삼고,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사고로 죽는다.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기 전, 마치 동앗줄을 움켜쥔 것처럼 자매는 일상을 변함없이 이어나가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니는 매일같이 춤을 추고 여동생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생이 우연히 초콜릿과 껌 두 개를 발견한다. 생애 마지막으로 맛보게 될지 모를 초콜릿 한 알. 그녀는 몇 번 언니를 건성으로 부르다가 아주 천천히 초콜릿을 입으로 가져간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입술.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망설임이 느껴진다. 조금만, 아니 절반만. 그녀는 작은 초콜릿을 이로 살짝 깨물려다 멈칫하더니 그만 입 안에 넣어버리고 만다.

 

나는 바로 그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책장이 너무 빨리 넘어간다. <1Q84>로 이어지는 하루키의 원더랜드와 현실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의 괴이한 실체가 모두 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단편과 장편들에서 참으로 알뜰하게 재활용되고 확장되는 세계와 인물과 상징들.

 

언젠가, 아마도 곧, 무라카미 하루키 옹은 마지막 책을 내놓게 될 테지. 그때를 대비하여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들이 책장에 몇 권 남아 있다. (고백하자면, 재미없을 것 같아 남겨둔 책들이라는...)  






  열림원에서 출간된 책의 뒷날개에는 그의 당시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 속 그는, 젊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젊은이처럼도 보인다. 



    어멋. 하루키에게 얇고 섬세한 속쌍거풀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 

 




 

 

 

 

 

  사건의 발단은 탄내였다.

  뭘 또 잊었구나 싶어 부엌으로 서둘러 가봤지만, 가스레인지는 중간밸브까지 잘 잠겨 있었다. 그렇다. 내가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던 거다. 허탈했다. 내가 아니라 아랫집 아줌마가 한 건 했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J를 이제 잘 시간이라며 침실로 들여보냈다.

 

  오랜만에 J에게 시집을 읽어주고 거실로 나왔더니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어 있었다. 음식 탄 냄새는 여전했다. 아니 거실 가득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세탁실로 뛰다시피 가서 뒷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심한 탄내와 함께 열기가 위로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일찍 잠자리에 든 남편을 서둘러 깨운 뒤 경비실에 전화했다. 아랫층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초인종을 여러차례 눌러봤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경비 아저씨가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받은 번호로 전화를 해봤더니 집전화로는 받질 않았고 휴대폰은 아예 꺼져 있었다. 윗집 아저씨가 계단을 뛰어내려와 상황을 살폈다. 그 집까지 냄새가 올라왔다고 했다. 경비 아저씨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잠깐 기다려보라면서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어느새 잠옷차림 그대로 뛰쳐나온 J가 소방서에 신고하자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내심 주저하고 있었다. 혹시 냄비 하나(?) 심하게(?) 태웠을 뿐인데 일을 크게 키우는 건가. 하지만 J가 바로 휴대폰을 가져와서 119를 눌러 건넸고 남편은 별 망설임도 없이 신속하게 신고했다. 남편은 조금 급박한 목소리로 주소를 두 번이나 말했다. 

 

  우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 입었다. 내가 빅백을 들쳐메자 남편이 그건 왜, 하고 물었다. "내 전재산이야." 가방 안에는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J가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는 걸 보고 그건 왜 갖고 가냐고 물었다. "그거 갖고 가서 먹으려고? 지금?" J는 선물받은 빼빼로 상자들을 슬그머니 내려놓고는 '크리스탈'을 부둥켜 안았다. 잠자리에서 안고 자는 돌고래 인형이었다. "딸, 인형은 놔두고 가자." "안돼! 이건 절대 안돼!"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차키와 휴대폰 하나만 챙겨들었다.

 

  같은 동 주민들은 전부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놀이터 앞에 모여서는 소방차와 사다리차와 구급차가 도착하는 걸 지켜봤다. 소방대장이 윗집을 찾았다. 아랫집이 잠겨 있으니 윗집을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야한다고 했다. 남편이 소방대원들을 따라가자 J가 아빠 어떡하냐고 훌쩍댔다.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크게 불이 난 게 아니잖아." 불이 꺼진 창 밖으로는 불꽃도 보이지 않았고 연기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주민들 대부분이 나와 있으니 불 켜진 집이라고는 우리집 하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우리집을 가리키며 수근거렸다. "불이 난 집이 어디야? 저기 불 켜진 집인가?" 나는 서둘러 아니라고 거기 아랫집이라고 강조했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속닥이듯 말했다. "저기 아랫집에 할머니 혼자 개 키우며 사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있는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서 입안이 말랐다. 다른 아줌마가 말했다. "그 집은 저기 윗집 아닌가요?" "거기도 할머니가 혼자 살고 아래 또 있어." 그러자 다른 아저씨가 강하게 부인했다. "아냐. 저긴 남자 혼자 살아. 내가 몇 번 봤어. 아까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어딜 나가는 것 같더라고."

 

  잠시 뒤 소방대원이 우리집 세탁실 창밖으로 나와 사다리차에 올라탄 뒤 아래층 세탁실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아찔해져서 두눈 질끈 감고 싶었지만, 사실 안경을 안 쓰고 있어서 소방대원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았고 그게 답답해서 눈을 더 크게 떴다. 휴대폰을 꺼내서 카메라를 켜고 줌인을 했다. 옆에서 J가 그걸 보더니 "엄마, 천잰데!" 했다. 얼굴에 웃음이 살짝 번진 게 방금 전 아빠 걱정을 하며 울던 아이가 아니었다. 조금 흥분해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사내 아이 둘이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게 보였다. 사람들은 팔짱을 끼거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은 채 하나같이 시선을 높이 들고 있었다.

 

  과연 우리 아랫집에는 누가 사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이사온 뒤로 아랫층 옆집 사람들은 몇 번 마주쳤는데 바로 아랫집은 거의 마주친 적이 없었다. 지난번 엘리베이터에서 엉겁결에 인사 나눴던 아저씨는 그냥 손님이었을까, 아니면 혼자 산다는 주인 아저씨가 맞는 걸까. 아니면 정말 할머니 혼자 사는 걸까. 지난달 엘리베이터 바닥에 버려져 있던 개똥은 윗집이 아니라 아랫집 개똥이었던 걸까.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소방물탱크차도, 사다리차도, 119 구급차도 모두 돌아갔다. 주민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이 불은 크게 나지 않았고 일사천리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집주인 없이. 경비 아저씨가 얼마 전에 옆단지에서 더 큰 화재가 났다면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신고해서 잘했다고 J를 칭찬했다. J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앞뒤 베란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탄내가 빠지려면 좀 시간이 걸릴거예요. 불이 나면 원래 윗집이 고생하죠." 남편은 소방대장의 말을 전해주며 그 밤에 달려와준 소방대원들을 실제로 보니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소방대원이 신발을 신고 들어와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공손하게 대답했다고도 했다. "네, 네, 신경쓰시지 마세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소방대원들이 다녔던 동선을 따라 걸레질을 네번 했다. 걸레질 네번이 아니라 스무번을 하게 돼도 '걸레질'로 끝나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안도와 감사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탁실 창문만 열어놓은 뒤, 베란다와 거실문을 닫고 식탁에 앉았다. 아랫집은 조용했다. 자신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주인은 어디에 있는걸까.

 

 

 

 

덧.

 

1. 아랫집은 여전히 조용하다. 누가 사는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과일이라도 사서 냄비 조문이라도 가야하나.

 

2. 얼마 전에 지방자치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소방관들이 사비를 털어 특수구조용 장갑을 구입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바로 장갑이 지급됐다고 한다. '면장갑' 스무 켤레. 구조용 장갑은 달랑 두켤레. 소방대원은 24명이었다고 하지. 면장갑으로 뭘 한다지. 구조용 장갑 두 켤레는 제비뽑기로 선택하나. 갑갑하다.

강바닥 긁어낼 돈은 있고, 연말이면 멀쩡한 포석 갈아치울 돈은 있는데 말이지. 사대강 22조, 자원외교 27조, 한국형 전투기 사업 18조. 그런데 보육비 삭감, 급식비 삭감, 도서지원비 삭감. 애 먹이고 공부시킬 돈도 없는데 사업한답시고 빚잔치하게된 집안꼴 같구나.   

 

#대한민국 소방관들의 현실 - 팟빵직설 만화. 신너루

 

   

 

 

 

 

 

 

 

  여동생이 즐겨 찾는 동네 카페는 공간은 아담하지만 창이 크고 넓어서 바깥 풍경이 한눈에 시원스레 들어온다. 그곳 창문에 "우리한테 멋진 게 뭔지 알아?"로 시작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하늘을 보면 문장들이 창공으로 비상하는 것 같다. 다만 필체가 다소곳해서 글자들의 목소리가 '포기'와 '시작'을 선언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양갈래로 머리를 따고 프릴 달린 꽃무늬 원피스에 흰색 목양말과 단화를 신은 여자애가 낯을 붉히며 속삭이는 것 같달까. 사실 내 로망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루트 66를 완주하는 거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꽤 무덤덤하게 저 문장들을 바라본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예전의 나라면 감흥이 전혀 없지 않았을 거다. '다 포기하고 우리 삶을 시작하는 것.' 인생의 변화는 마치 여행 같아서, 감행하는 바로 그 순간 가장 흥분되고 설레는 것 같다.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뒤로는 발꿈치에 잡힌 물집을 터뜨리고 발바닥에 굳은살을 박으며 묵묵히 걸어야 한다. 때로 예기치 못한 일을 겪어가면서, 기대와 전혀 다른 풍경 앞에 망연자실하게 되더라도. 어디서 무얼 하든, 그 주체가 나라면, 그게 내 인생이며, 그렇다면 포기할 것도 다시 시작할 것도 없지...

 

  예전의 내가 툭하면 짐 싸고 떠날 준비를 했다면, 요즘의 나는 부려놓은 짐을 세간살이로 바꾸는 중이다. 단지 내게 가정이 생겨서도 아니고 나이들어서도 아니라, 나란 인간이 지닌 기질적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누구가에게는 '시작'이 미션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마무리'가 미션이다. '떠남'이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정착'이 도전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기름은 간당간당, 미터기는 고장, 현재 주행거리 미지수.

  어쨌든, 완주하자. 

 

 

 

 

 

 

 

 

        둘째 여동생이 커피를 보내줬다. 루왁과 위즐, 그리고 라오스 커피. 명성만 익히 들어온 루왁과 위즐 커피는 안타깝게도 입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의 바디감이라는 표현을 이 두 커피를 마셔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밀도가 굉장히 높았다. 사향 고양이와 사향 족제비의 위장과 장 점막을 천천히 훑고 지나가는 원두콩들을, 어쩔 도리 없이 떠올리고 말았다. 불행히도 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엔 커피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니까. 쿠로의 크고 작은 '맛동산'이 자꾸 떠올랐다. 어쨌거나 찾아보진 않았지만 향과 바디감은 십점 만점에서 십점일 것 같다. 때마침 집을 찾은 지인들에게 커피를 내놓았더니 반응이 뜨거웠다. 나는 오히려 라오스 커피를 더 즐겨 마셨다. 여동생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서 우유와 설탕을 넣어 달달하게 만들었다. 온몸이 눅진하게 풀릴 만큼 달았다.

 

 

 

 

 

 

       "인도네시아 쿨린 커피도 맛이 재미 있어.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후배가 커피믹스를 갖다줬는데 달달해. 종류는 넛트커피, 초코, 바닐라, 맛은 다 비슷한데 하나가 좀..."  


       지난번 환갑 여행때 둘째 여동생이 고맙게도 믹스 커피를 잔뜩 싸들고 왔다. 나는 '맛이 재미 있다'는 여동생의 말이 재미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개중에 맛이 좀... 희한한 게 있었다. 여동생의 말처럼 입안이 싸한 게 양치질한 느낌이었다. 첫 맛은 달달한데 마시고 나면 민트차를 마시고 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완벽한 입가심용 커피랄까. 

 

        며칠 전에 <냉장고를 부탁해>를 봤는데, 이찬오 쉐프가 맛이 신나고 격렬해서 범퍼카를 탄 것 같다고 했다. 그의 표정과 '맛이 신나고 격렬하다'는 표현이 재미나다고 생각했다.

 

                    나도 앞으로 밥상 앞에서 이렇게 말해볼까. 음... 뭔가로 들끓는 맛이군 (MSG). 고루한 백면서생이 웅크리고 있군(NO MSG). 훗.  

 

 

 

 

 

      

  

여동생이 더불어 보내준 쿠키와 파이.  

가까이 살았다면 넌 나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살찌웠을 거야, 동생.

                 그러니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사는 건 하늘의 뜻.  

 

 

 

 

 

 

         버지니아 울프 사진을 배경으로 한, 

         저 구깃구깃 낡은 메모지의 정체는?

 

         얼마 전에 J에게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점을 물었다. 그렇다. 나는 이상한 질문으로 아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엄마. 후훗.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J 왈,

          "외로움은... 어딘가에 고립된 거? 방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고독은... 기분이 가라앉아. 근데 마음이 전환되는 것 같은 거야. 우울한 것도 같은데, 진짜 마음 깊이 상쾌한 느낌이 드는 거지."

          와 -  

          나는 포스트잇을 찾아 허둥댔다. 그리고 방금 들은 멋진 말들을 사진 속, 저 날아가는 악필로 휘갈겨썼다. 일필휘지가 아니라 악필휘지랄까. 그러고는 메모지를 잘 접어서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컴퓨터 앞에 앉으면 간만에 육아일기를 써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고는, 잊었다. 

           며칠 뒤 세탁기 앞에서 청바지 호주머니를 살펴보다가 '기적적으로' 메모지를 발견했다. 며칠 전에 했던 똑같은 결심을 다시 하며 입고 있던 잠옷 바지 호주머니에 넣어뒀다. 다음날 아침, 바지를 갈아 입다가 '우연히'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메모지를 발견. 어머, 이걸 잊고 있었네! 갈아 입은 면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뒀다. 이번에야말로! 결심을다지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저 꼴이 된 거다. 

        

         어쩌다가 육아일기가 구사일생한 메모지에 대한 기록이 돼 버렸네. ㅠ.ㅠ 


         덧.

          1. "제 글씨가 원래 저 모양 저 꼴은 아닙니닷!" 

          천재는 악필이라고 반평생 내 글씨를 변명하고 포장해오며, 각고의 노력 끝에 꽤 괜찮은 꼴을 갖추게 됐으나 가끔 피치못할 사정으로 요요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소심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언급해둔다. ㅠ.ㅠ;;;; 

          2. 버지니아 울프 배경 사진은 요즘 내가 갈아 탄 수첩을 찍은 것이다. 민음사에서 할인판매하던 걸 작년 북축제때 사고는 올해 북축제가 끝나서야 드디어 개봉!

            나는야, 아직도 예쁜 문구류를 보면 설레는 녀자...  >ㅁ<       

 

 

어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새로운 뉴스를 들었다.

 

 

 

 

승희 학생이 배가 가라앉기 전 선미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세월호 후방에서 트윈 엔진이 일으키는 물보라가 한쪽에서만 일고 있었다는 것. 전문항해사, 엔진설비 전문가, 교수 등의 전문가들이 이건 엔진 하나가 꺼져 있는 경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미 사고가 일어나기 20분 전에 엔진 하나가 멈춰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엔진 이상에 대한 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배는 병풍도 옆에서 대회전을 시도했으며 결국 뒤집혔다. 법정에서 항해사, 기관장, 조타수 세 명 모두 엔진 두 개가 정상 작동했다고 진술했고 정부도 이에 부합하는 항적도를 제출했다. (AIS 데이터에는 다수의 규칙적인 누락구간이 존재한다. ?) 게다가 정부는 한쪽 엔진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정상속도로 배가 운행했다고 발표했다. 김어준은 질문한다. 선원들이 뭘 믿고 그렇게 거짓진술을 했을까? 자신들의 말을 뒷받침할 자료가 나올 거라 알지 않고서 하나같이 입을 모아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엔진 하나를 일부러 껐다면 왜? 1년이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의문점은 늘어나고 질문은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왜? 혼란스럽다. 

 

* 관련 내용은 아래 동영상, 파파이스 58. 1시간 39분부터

* 아래 동영상 내용이 잘 요약된 블로그. 클릭! 

* 파파이스에서 제기된 엔진 정지 문제에 관한 다른 입장. 클릭!

 

 

 

 

                                   

      잊지 않기 위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읽고 읽고 또 읽는 일. 그리고 몇 대목을 옮겨적어본다. 

 

1. <문학동네> 계간지 여름호에 실린, 백지은 평론가의 <수평선이 보인다>는 글을 읽다가 세월호 사건을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연결시킨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발췌했다. 봉준호 감독의 저 인터뷰 내용은 언젠가 읽어본 듯도 한데, 그때는 '(사회적) 재앙의 개인화'라는 단어가 이런 식으로 마음에 새겨질 거라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어도 정부와 언론 심지어 시민마저 이내 관심을 거두거나 엉뚱한 데로 관심을 돌리고(바이러스 타령을 한다), 괴물을 끝까지 추격하고 처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는 군대, 경찰, 기자도 아니고 모험가, 역사가, 작가도 아닌 오직 한 가족, 피해자의 유가족뿐이었다. 말하자면 <괴물>은 갑작스런 괴물의 등장으로, 아니 실은 미군의 독극물 방류 혹은 그런 소행이 가능했던 한미관계의 오랜 파행과, 그로 인해 서서히 자라난 괴물의 존재를 오랫동안 둔하게못 알아차린 사람들, 또 눈앞에 괴물이 나타났어도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대처, 조사의 직무를 유기한 국가의 무책임 등 숱한 적폐의 결과, 어느 날 삶이 부서져버린 유가족의 이야기다.

 

영화가 상영되었던 2006년의 관객들보다 오히려 요즘,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인들에게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공교로운데, 영화의 이런 면모들과 관련하여 당시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 사람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고, 도움은커녕 방해만 받지만 아무도 시스템 탓 안 하고 자기들끼리 보듬으며 재앙을 개인화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예를 들어 대구지하철참사도 구조적 모순을 탓하기보다 내가 돈 잘 벌었으면, 대학 입학했을 때 차 사줬으면, 안 당했을 변을 당했다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 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재앙은 훨씬 더 구조적인 것에서 온 건데, <괴물>의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눈먼 자들의 국가 - 10점
김애란 외 지음/문학동네

 

 

2. 이것은 세월호라는 배가 불운하게 침몰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는 박민규 작가의 문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 같지만, 근 한달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제 세월호라는 배에 우리 모두 올라타 있고 배가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는데, 정작 이 배를 움직이는 선장과 선원들은 언제라도 가장 먼저 배를 떠나 젖은 돈이나 말리고 있을 것 같다는...     

 

 

침몰해가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해경 123정은 기울어가는 배 주위를 돌기만 하다가 딱 한 번 접안을 하고 그들을 옮겨태웠다. 승객들의 출입구가 있는 선미로는 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어 몰랐다고는 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원천적으로 통제된 선수 쪽 조타실이었다. 아니, 그 마저도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선원임을 알았고, 그들은 족집게처럼 476명이 타고 있는 배에서 선원들만 빼내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접안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또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장과 선원들, 또 해경은 탈출하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배를 빠져나온 승객들만이 가까스로 헬기와 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구조가 아닌 탈출이었다. 해경은 끝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의자로 창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외침도 외면했다. 그리고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p48)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p57)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3. 손은 못잡아줄지언정 유가족들에게 험한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가족을 그렇게 떠나보냈는데, 적어도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어느 시대건 '사고'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불운이라는 말로 '사회적 재앙을 개인화'하지 않고 진실을 찾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 대한국민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정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돼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의 안정과 자유와 행복을 이미 잃었다. 그런 그들이 주저앉지 않고 여전히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서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 세월호 피해자 합동분향소에서 엄마가 딸에게.

 

 

 

잊지 않겠습니다
시를 잘 써 상까지 받은 승희에게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은 승희에게.

세월호가 침몰하고 9개월이 다 돼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 우리 딸에게 편지를 쓰는구나. 너무나 슬퍼서 사진조차 보지 않으려 하며 살았는데, 세월은 흘러 벌써 2015년이 됐어. 아직도 우리 딸이 엄마 곁에 없다는 게 꿈만 같아.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어.

 

늘 사랑과 감사로 가득했고 고마움을 잘 아는 예쁘고 착한 딸이었는데, 왜 이리 엄마 곁을 빨리 떠나 버렸는지…. 엄마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하루하루 고통이구나. 마지막까지 꼭 구조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던 딸이 이제는 이 세상에, 이 하늘 아래 없다는 게 너무나 슬퍼서 매일 눈물이 멈춰지지 않아. 우리 딸이 없는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만 돌아가는데….

 

엄마는 4월16일 마지막 순간에 배 안에서 구명조끼 입고 복도에 앉아 있는 우리 딸의 모습이 너무 슬퍼서 이 세상이 원망스럽고 용서가 되지 않는구나. 얼마나 무섭고 또 무서웠을까?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사랑하는 딸, 승희야. 비록 17년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우리 딸과 함께했던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어. 너무나 행복했단다. 우리 딸과 같이했던 그 소중한 시간 꼭 가슴에 묻고 기억하며 살게. 우리 딸도 모든 것 다 잊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친구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렴. 엄마, 아빠는 영원히 우리 예쁜 승희를 기억하고 사랑한단다.

 

꿈속에서라도 널 보고 싶은 엄마가.

 


신승희양은

 

지난해 4월12일 엄마와 아빠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결혼 20주년(4월6일)을 맞아 단둘이 간 1박2일 여행이었다. 비용은 막내딸인 승희가 부담했다. 때마침 장학금을 타게 되자 엄마, 아빠에게 돈을 주며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단원고 2학년 3반 신승희(17)양이 엄마, 아빠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며칠 뒤 수학여행을 떠난 승희는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거실 소파 위에는 승희가 몰래 두고 간 편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쓴 이 편지에는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사랑해’라고 쓰여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언니를 위해 ‘언니 계속 자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승희는 4월22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1월11일은 승희의 생일이다.

 

승희는 수학여행을 가기 보름 전, 천안함 사건을 주제로 <항해>라는 시를 써서 학교에서 우수상을 탔다.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리’로 끝나는 짧은 시였다. 승희는 이 시에 나오는 문구처럼, 지금 친구들과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고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