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모든 매혹은 똑같은 거예요.” 그가 말했다. “내면의 빈 곳에서 오거든요.”

그는 검지로 가슴을 쿵쿵 쳤다.

“뭐가 없어지면 그 자리를 채워야 하거든요. 책·그림·사람, 다 똑같단 말입니다….”

                        - 당 신 을 믿 고 추 락 하 던 밤(The Blindfold by Siri Hustvedt)


0. 매혹적인 이야기. 신경질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1. 첫문장에 붙들리고는 앉은 자리에서 책을 완독한 게 얼마만인지. 격렬함 뒤 찾아오는 나른함이랄까. 책을 덮고 한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2. 각각의 단편 속에서 감수성 예민한 문학전공 대학원생 아이리스는 사랑과 예술, 이상적 자아와 낯선 자아 속에 사로잡혀 있는 개성 강한 인물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인물과 관계와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 흥미로운 점은 한 인물의 기행에 가까운 행태가 다른 이야기 속의 아이리스에게 엿보인다는 것이다. 죽은 여인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모닝 씨라든가 자아가 분열된 O, 기괴한 연출에 열중하는 조지의 모습은 아이리스가 스스로 발굴해내는 내면의 모습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연작소설집이지만 마지막 수록작은 앞선 세 작품을 시간적으로 품고 있다. 불현듯 끝나버리는 엔딩이 앞선 세 단편에서는 매력적이었으나 마지막 단편에서는 다소간 허탈. 아이리스의 긴 방황에 마침표를 찍는 듯하지만, 다른 결말들에서처럼 깊은 여운을 맛보진 못했다. 어쩌면 읽느라 지쳤는지도. 하지만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은 대부분 마지막 단편에 모여 있었다. 

3. 마지막 단편에서 아이리스가 그림을 묘사하는 대목. 첫번째 단편에서 모닝이 죽은 여인이 남긴 소지품 묘사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 기억을 기억하는, 사후의 삶.

"현실의 빛이 아니라 내면의 빛이랄까, 강력한 기억의 빛이에요.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이미 지난 일처럼, 이미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마 그래서 나중에 그렇게 강렬한 효과를 낳나 봐요. 내 말은 그 사물 자체가 기억이고 사후의 삶이고, 그래서 기억을 기억하고 있는 거라는..."


4. 소설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한 대목.  

"그 여섯 블록은 오디세이가 무색했다. 시각과 함께 평형감각이 사라졌고 나는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머릿속으로 한 블록 한 블록을 헤아려 전진했다. 마이클이 인도하려고 팔을 뻗었지만 난 그를 밀어내며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5. 때로는 한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묻어둬야할 말도 있다. 

"말이 시간을 두고 가라앉아야 할 때가 자주 있죠. 있잖아요, 한동안 땅 속에 묻어두는 거."







지난여름 나는 계속 아팠습니다. 그 아픔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져 붉은 피가 보이는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숫자와 그래프로 증명되는 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고통이었습니다. 호소할 수 없는 고통만큼 괴로운 것은 그것이 나를 고독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치 내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 김동영/김병수의 <당신이라는 안정제>의 첫



  작은집 아이들은 좀 '약한' 것 같다고 언젠가 큰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때마침 자리를 비운 제3자에 대해 말하는 듯 목소리를 낮췄는데, 그녀의 은근한 눈빛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곤혹스러웠다. 내가 바로 그 작은집의 맏이인데, 내가 모르는 다른 작은집 아이들이 있는 건가. '너희들'이라는 2인칭을 '작은집 아이들'이라고 3인칭화시켜서 표현한 것이 듣는 이의 충격을 감소시키려는 배려인 건지 순화시켜 표현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화법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청자가 누구인지 잊어버렸거나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청자를 과대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냥 별 뜻 없이 지나가는 말이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바꿨다. 그때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한 게 억울했을까.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는 뒤끝 쩌는 감정적인 인간이다.

 

  우리가 나눴던 대화의 맥락상 그 '약하다'는 형용사는 신체적인 게 아니라 심리적인 특성을 꼬집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나약하다' 또는 '유약하다'이겠지.

 

  내가 봐도 큰집 아이들은 독한 데가 있었다. 큰애는 일찌감치 사시에 통과해서 두 아이를 시댁에 맡겨두고 지방법원을 돌고 있었고, 둘째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넷이나 키우고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뒤늦게 원하는 방식대로 살겠다고 철밥통 걷어차고 집에 주저앉은 꼴이었고, 남동생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모처럼 두 사촌들의 근황을 들으면서 나는 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왁거렸지만, 그때만 해도 그 대화의 결론이 "작은집 아이들은 좀 약한 것 같다"는 게 될지 정녕 몰랐기에 "대단하네요!" 감탄사를 연발했다. , 정녕 속없다. 역시 추석은 관계를 해치고 정신건강에 해롭다.

 

  하지만 그 말에 자존심을 다쳤던 이유는 그게 내 급소를 건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촌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출중했다. 하지만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빠져본 적은 없었다. 그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도 한 몫 했고, 결정적으로 워낙 기질이 달랐다. 말과 해마를 비교할 수 있나? 우리들의 부모들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작은집'의 우리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그러니 그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큰어머니와 대화를 이어나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날아온 화살에 거의 절명할 뻔했다. 상처로 남은 건 그걸 상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나 또한 큰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즈음 나는 난생 처음 맛보는 열패감과 무력감으로 어쩔줄 몰랐다. 내 선택에 대한 의심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내뱉을 때조차 내 자신이 징징거리는 것 같아 그 또한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 내가 남동생의 공황장애를 그저 연민으로만 껴안을리 만무했다. 남동생의 힘들고 괴롭다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한 신세한탄처럼도 들렸다. 내 자신과 남동생에 대한 그런 감정들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내가 감추려던 게 들통난 셈이었다. 그때 친정엄마가 옆에 없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큰어머니의 말은 앞으로도 그냥 내 가슴에, 그리고 이 공개적 일기장에 묻어두는 걸로.

 

 

 

  김동영/김병수의 <당신이라는 안정제>는 제목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사실,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제목이다. 참 잘 지었다. 당신이라는 안정제...라니 시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나는 '힐링', '괜찮아' 류의 책들이 지겨웠다. '괜찮지 않다' '아프다' 그러니 그냥 '미워해도 돼' '원하는 대로 살아' 류의 책들도 지겨웠다. 그런 책들이 감성적으로 포장하고 심리학적으로 무장한 조언들이 허무하게 보였다. 책으로 위로받고 치유받을 정도라면 그 사람은 이미 '괜찮은' 거다. 너무 아프고 아주 괜찮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은 소용없다. 그들에게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고, 이 책 또한 그저 값싼 위로의 말을 늘어놓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애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이 책은 감성에세이가 아니었다. 우울증을 앓는 이와 그를 오래 상담한 정신과의 사이에 이뤄진 일종의 대화였다. 나는 작가 김동영의 용기에 놀랐고, 어쩔 수 없이 남동생을 떠올리며, 자세를 바로 한 채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지금, 두 작가 모두에게 감탄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니까 내담자만이 아니라 상담자 또한 솔직하게 자신을, 자신의 상처와 괴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쩌면 '까발린다'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김동영 작가의 경우에는. 이 사람은 웬만해서는 자신의 병에 지지 않을 것이다. 아픈 자신을 대면할 용기가, 그걸 다른 이들과 공유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상담의 또한 아무리 힘들어도 환자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환자들의 '눈물 앞에 앉는'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그걸 힘들어하는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한 채 '다시, 눈물 앞에 앉'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전하는 조언들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아픈 사람은 정작 아프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어쩌면 덜 아파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만 혼자만 아픈 건 아니라는 것을요. 모두가 같은 감정과 고통을 느끼며 이런 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그 말에는 좀더 밝고 건강한 삶에 대한 애착이 묻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그리고 나의 도시 서울로 말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갇혀버린 저를 미워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 옆에는 이런 날 그냥 지켜봐주고 마음 써주는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으니깐요. 설사 그들이 제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그냥 나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위로받을 수 있을 겁니다.

 

건강하십시오.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세요. 힘들면 당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분명 거기에 누군가 있을 겁니다. 만약 없다 하면 시들어빠진 꽃이라도 있겠죠. 그걸 통해 위안을 받으십시오. (p259)

                       

                                                                                                    - 김동영


창문도 없는 작디작은 이 진료실에서 팔 년을 일했다. 그동안 나는 달라졌다. 내가 그걸 느낀다. 감정이 새어나가는 느낌. 어느새 눈물도 말랐다. 어떻게든 내 진심을 전달하고 싶은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울해서 무거운 마음이 아니라, 마음이 꿈쩍도 하지 않아 무겁기만 하다. 마음이 멈춰서버렸다.

 

... 그냥 서글펐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고, 무어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더이상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슬펐던 거겠지. 변해버린 나란 사람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었다.

 

먹먹한 마음을 안고 다시 출근. 비밀번호를 누르고, 연구실 문을 연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더 마신다. 메일을 확인하고, 책을 잠깐 읽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아홉시다. 가운을 걸치고, 진료실로 내려간다.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다시, 눈물 앞에 앉았다. 이전처럼 나는 그들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까? (p249)


                                                                                                       - 김병수




  '내 인생의 책'이라는 수사는 부담스럽지만,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내게는 그렇게 부를만한 책이다. 그 때문에 며칠 전 도서관에서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이란 책이 반납함에 놓여있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페터 비에리의 필명이다. 나는 그가 소설 쓰는 언어철학자임을 진작 알았지만 그가 '내 인생의 책'의 저자임에도 그의 철학서(?)들은 찾아본 적이 없다. <자유의 기술>. <어떻게 살 것인가>. 제목만 봐도 딱히 흥미가 일지 않았다.

  

  일단 그 책을 집어든 건 '페터 비에리'라는 이름 때문이었지만, 내가 읽기 시작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삶의 격: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독일어 원제는 해석 불가. 영어 제목은 <Human Living: A Way of Dignity>. <삶의 격>이라는 한국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요즘 '존엄dignity'라는 말에 꽂혀 있다. 인간의 '존엄'을 보여주는 사람을 보면 장소를 불문하고 울컥하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다. , 나이 탓인가. 훌쩍. 어쩌면 현실세계에 그런 사람이 드물어서인지도. 그도 아니면 나 또한 강팍하게 살아가느라 '존엄성'을 잃게 될까 봐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심리적으로 몰리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저마다의 '안정제'가 필요하다. 친정엄마에게는 "니 모습 그대로 족하다"고 말해주는 하나님이 '당신의 안정제'였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이거나 친구일지 모른다. 내게는 대체로 책이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치료가 절실한 경우도 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이 경쟁사회가 더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벼랑으로 모는 것 같다. 존엄성을 위협하는 사회, 직장, 학교, 가정, 관계들. 하지만 상담이 보편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정신과의나 전문상담가를 만나는 일에 쉬이 발걸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삶의 격>에서 이런 일화가 소개된다. 작가 페터 비에리는 언젠가 약국에 갔다가 이웃이 정신병 치료 약품을 받아 가는 걸 보게 된다. 이웃이 창피한 듯 눈을 내리깔자 그는 웃으며 먼저 말을 건다. "저도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는 간이 안 좋다 뭐 어쩌고 하더니 이제는 머리니 신경이니 뭐니, 이러다가 당최 뭐가 남아나겠습니까."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결국 커피를 마시러 간다. 그걸 계기로 종종 그들은 같이 커피를 마신다. 그는 이 일화 끝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의 존엄성은, 내면의 독립성이라는 것이 모래성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이해심으로부터 인간 사이의 연대감이라는 값진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p99)

 

작가는 또한 이렇게도 말한다.


치료를 받으러 가는 행위는 존엄성의 표출이며 상처 입은 허영심을 존엄성의 훼손이라고 오해하는 거짓 자존심을 거부한다는 단호한 표현이다.

 

  어쩌면 전문가들을 향한 '첫 발'을 떼기 어려운 이들에게 <당신이라는 안정제>'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을 공감받지 못해 고독한 이들에게,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유약하다'는 타인의 판단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두 저자는 따뜻한 ''을 내어줄 것이다내게 그러했듯 말이다.




 

 

 

 

우리는 하늘이 부과하는 해, 바람, , 안개, 비 등을 견뎌내야 하지만, 또한 그 의미를 바꾸고, 그것들을 상상하고 동경하며 미화할 줄도 안다. 저마다 각자의 대기 현상이 있는 것이다. 방과 후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간식 마들렌의 맛과 같이 계절들은, 그것을 회상하는 동시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매우 선명한 친근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동시에, "이젠 계절이 없어졌다"고 하는 표현은, 현재의 시간과는 결코 같아질 수 없는데다 항상 모순되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콜레트는 "그 시절에는 혹한과 폭서가 있었다.(...) 어떤 겨울도 이젠 순수한 백색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 집단적 상상력을 채워주는 시적인 연상들에도 불구하고, 그 기반과 정의조차 흔들리는 계절들은 장차 위협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조용히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계절들은 우리에게 단조의 나지막한 소리로 인생의 축소판처럼 작은 교훈을 언제나 들려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어야 할 것이다. 계절들은 흐르는 세월과 모든 사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노화를 말해주는 동시에, 때로는 안심되고 때로는 걱정스러운 모습이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반복'이라는 역설적인 선물을 선사하는 것이다.

 

                                                                                         - 알랭 코르뱅 외 , <날씨의 맛>의 끝.

 

   나는 재채기를 했다. 커피잔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책상이 꽃가루로 뒤덮혀 노르스름해진 걸 발견했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손을 대면 금세 바스라져 가루로 날릴 것 같은 흰 갓털도 눈에 띄었다. 희미하게 바람이 불자 갓털은 마우스 근처까지 굴러왔다가 순간 공중에 떴고 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이미 책상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재채기를 했다.

   하늘과 경계를 이룬 숲의 끄트머리가 연푸르게 변해 있었다. 나는 오래 바라봤다.

   계절은 깊어지고 있다.

   나는 책을 덮었다. 노트북을 펼쳤다. "계절이 깊어지고 있다"라는 문장을 썼다. 그러다가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고 나는 천천히 백스페이스키를 두드려 글자들을 지웠다.

   그는, 그 작가는 말했다. 날씨로 소설을 시작하지 마라. 그만큼 흔해서이기 때문일 거다. (참고로 그는 ''으로도 시작하지 말 것을 습작생들에게 조언했다.)

 

 

 

 

   비와 빛과 바람, 눈과 안개와 뇌우. 날씨는 마음을 들쑤시거나 어지럽히고, 심지어 내가 머물고 있는 물리적 공간조차 바꿔놓는다. 말하자면 '기상 감수성'의 힘이랄까. 지붕을 없애고 벽을 허문다. 마음은 이미 비에 젖고 빛에 물들며 바람에 흔들린다. 눈으로 얼어붙고 안개로 아득해지고 뇌우로 동요한다. 그렇게 일상적 자아에서 "기상적 자아"로 손쉽게 몸을 바꾼다. 그렇게 몸을 바꾼 이들 가운데 격렬하고도 서두르는 몸짓으로 붓이나 펜촉을 적시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외부 세계에는 눈이 가려진 채) 각자 내면의 세계로부터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상상하고 창작할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에 따르면, 이 예술은 세상만사를 '탄생시킨다'.(p188)

 

    그러므로 어린 시절 내 (거의) 모든 글(어쩌면 그림과 사진까지)도 그날의 비와 빛과 바람, 또는 눈과 안개와 뇌우에 기대 쓰여졌다. 그게 나만은 아닐 것이며, 바로 그 점을 작가는 주의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문어로 구축된 세상에서 클리셰만큼 경계해야할 것은 없으므로.

 

    하지만 날씨만큼 자신에게로 직행할 수 있는 통로가 또 있을까. 일상세계를 뒤로 한 채 서정의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통로. 때로는 그 통로가 발휘하는 힘이 강력한 나머지 통로 자체가 상징적 세계가 되기도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화가와 시인이 안개의 존재와 매력을 알려준 뒤에야 사람들은 안개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스티븐 킹의 <미스트>와 김승옥의 <무진기행>, 박찬옥의 <파주>를 보고난 뒤에야 사람들은 스티븐 킹과 김승옥과 박찬옥의 안개를 구별해내며, 우리는 이제 다른 눈으로 안개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템스 강의 연무는 모네가 "변모하는 세계의 정수를 파악하려" 고심하게 하고, 모네의 이런 작업은 수십년 뒤 일본 조각가 나카야 후지코로 하여금 ", 공기, 바람, 시간을 가지고 유희하며 거기서 나오는 안개로" 이뤄진 최초의 조각품을 만들게 한다. 후지코의 연무 속을 거닐고 온 사람들은 당분간 안개낀 세상을 맞닥뜨릴 때마다 후지코의 안개를 떠올릴 것이며 그들이 의식하지 못했어도 거기에는 모네가 포착하려 했던 템스 강의 연무 또한 흘러들어가 있다.

 

 

Monet - Houses of Parliament, Fog Effect 1904

 

 

 

Fujiko Nakaya:Veil, photography by Richard Barns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날씨는 일상에 무뎌진 감성을 일깨우는 뮤즈이자, 우리를 새로운 세계(어쩌면 '서정적 자아'라는 잊혀진 세계)로 인도하는 통로이며, 때때로 우리 앞에 포즈를 취한 채 새롭게 해석되길 원하는 모델이라고.

 

    어쨌든 나는 소설이 아니라 독서일기를 쓰려 하고 있다. 책상을 쓸어낸 손바닥에 노랗게 묻어난 꽃가루. 보푸라기처럼 하늘거리는 씨앗의 흰 갓털. 햇빛이 닿는 곳마다 연푸르게 돋아난 이파리. 정수리와 어깨로 쏟아지는 따가운 햇볕. 때때로 책장과 갓털과 꽃가루를 날려 재채기를 터뜨리게 하는 미적지근한 바람. 훗날의 내게 오늘의 독서감각과 감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환기시킬 수 있는 건 역시 날씨다. <날씨의 맛>이라는 책을 읽던 날의 날씨. 이 책을 통해 인식하게 된 내 "기상학적 자아"가 날씨의 맛을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나는 다시 글자를 입력한다.

     "계절이 깊어지고 있다.

    나는 오래 바라봤다. 하늘과 경계를 이룬 숲의 끄트머리가 연푸르게 변해 있었다.

    나는 재채기를 했다. 희미하게 바람이 불자 갓털이 마우스 근처까지 굴러왔다가 순간 공중에 떴고 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이미 책상 너머로 사라졌다. 손을 대면 금세 바스라져 가루로 날릴 것 같은 흰 갓털도 눈에 띄었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커피잔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책상이 꽃가루로 뒤덮혀 노르스름해진 걸 발견했다. 나는 다시 재채기를 했다."

 

 

                             날씨의 맛 - 8점
알랭 코르뱅 외 지음, 길혜연 옮김/책세상

 

      덧:

      부제가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를 느끼는 감수성의 역사'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이 매력적인 부제에 이끌려 책을 집어들었다.

      알랭 코르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집필했다. 알랭 코르뱅은 '감각, 감성, 심성'의 역.사.를 연구해왔다고 한다. 이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챕터별로 대표적인 기상현상과 그 기상현상을 느끼는 인간의 감각, 감정, 감수성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냈다. 이제껏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날씨를 인간적 관점에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통해 다루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문헌과 예술작품을 인용하여 각각의 기상현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감성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짚어낸다. 내게는 이 책을 통해 '기상학적 자아'를 발견했다는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새해가 밝았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다.

 

코뿔소의 평균수명은 칠십 세다

납치나 해볼까

 

나는 잠에서 깼을 때 머릿속에 불현듯 스쳐지나간 이 두 문장에 대해 침대에 누운 채 한동안 생각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들이어서 좀처럼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이른 아침 기운이 퍼져 있는 침침한 방과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아내의 차분한 표정은 작년 그대로였기 때문에 나는 금세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말았다. 새해에 떠오른 생각이 무언가 의미 있을 거란 기분이 들어서 허겁지겁 적어두지 않았다면 금방 잊어버렸을 것이다.

 

<2016 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오한기, "새해"의 첫

 

 

 

단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집에 들어앉은 건 아니었으니, 매해 무언가를 도모했다. 일은 이어지지 않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엎어지거나 매번 실패했으며 대체로 공상 속에서만 승승장구했다. 책을 읽거나 일기라도 쓰지 않을 때면 머릿속에서는 (      )나 해볼까, 하는 생각들이 물밀듯 흘러들어왔다. 괄호 안에는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 틈입하곤 했다. 그것들의 정체는 차마 고백할 수 없다. 온라인상에서라도 지켜야할 이미지란 게 있으므로. 농담처럼 쾌활하게 말해봤자 조롱받거나 오해받거나, 일 거다. 이를테면,

 

(물구나무도 섰는데) 납치나 해볼까

(스파게티를 먹은 김에) 납치나 해볼까 (p269)

 

와 본질상 그리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었던 건 이렇게 괄호를 채우며 노는 동안에는 적어도 울적하지 않았고, 아니, 꽤 즐거웠기 때문이다.

 

지난주 시부가 집에 오셔서 진지하게 말씀하시길,

"예술은 죽어야 인정받는다. 고흐를 봐라."

나는 그냥 고개만 주왁거렸다. '인정'''을 위해서 예술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 이렇게 대꾸할 텐데, 나 또한 아이의 교육과 우리의 노후를 아주 가끔은 심각하게 고민하는 터라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 않으면 영감이 몰아닥치거나 직장이 없으면 글 쓸 시간이 솟아날 것 같았지만 겪고

보니 둘 다 아니었다. 삶은 의미 있지도 않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거라곤 이게 유일했다. (p268)

 

이런 식의 고백을 시부에게 할 수는 없었다. 시모는 말없이 나를 봤다가 빌려가신다고 책장에서 꺼내 들고 있던 책- 함석헌의 <너 자신을 혁명하라>를 만지작거리고 나는 그런 시모의 눈짓과 몸짓을 해석하느라 골치가 아팠다가 도움을 요청하듯 남편을 바라보지만 남편은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졸고 있었다.

 

요즘 나는 예전처럼 그리 울적해 있지는 않다. 소설 속 화자처럼 "당나귀가 된 거 같아. 어떻게 하면 다시 거북이가 되지?" 다섯 시간이나 울부짖으면서 남편을 괴롭히다가 남편이 "당신을 달래주느니 차라리 내가 당나귀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더 이상. 예전에는 그랬다. 한달에 한번씩 규칙적으로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남편을 괴롭혔다. 최근에는 말없이 두통약이나 소화제를 먹고 밥을 배불리 먹는다. 이제 나는 주위 사람들과

 

인간의 언어로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직립보행으로 산책도 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직업을 구하고 돈도 벌어 사람 노릇도 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고, 이걸로 만족한다. (p271)

 

하지만 어떤 열망에 사로잡혀 잠 못이루는 밤이 있다. 그런 밤에는,

 

(한상경처럼) 납치나 해볼까 (p285)

 

이런 문장을 밤새 만들던 소설 속 화자처럼 나 또한 다시 나만의 괄호 채우기에 몰두한다. 아마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향한 열망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 열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는 현실 순응, 안착을 꿈꾸며 내 이상과 타협하려 하겠지. 끊임없이 괄호들을 제시하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엉뚱하고 난감한 괄호들이 내 열망을 더 교묘하게 부추기는 데도 말이다.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8점
김금희 외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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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소설 도입 가운데 이렇게 흡인력이 좋았던 게 있었던가. 첫 문장을 읽고서 다음 문장을 읽지 않고는 못배겼다. 그러다가 난감해졌고 혼란스러웠다. 읽고난 뒤 내가 도대체 뭘 읽었는지 말할 수 없는 이 막막함이라니. 이 소설은 요약하기도 어렵다. 요약을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이 소설과는 다른 무엇이 될 것만 같다.

 

작가지망생 ''는 어느 날 '납치나 해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인 한상경이 키우던 피츠제럴드를 납치하기에 이른다. 피츠제럴드는 문학적 광기로 제정신이 아닌 한상경이 지하철 화장실에서 주워온 갓난아기다. 나는 피츠제럴드를 '친친나트'라 새로 명명하고 비로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역시 이 소설의 매력도 헛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 또한 오리무중이다. 요약해보면 왠지 피츠제럴드/친친나트는 작가의 뮤즈를 빗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친친나트 때문인지 글이 잘 써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을 쓰다 막히면 친친나트를 쓰다듬었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어디에선가 해답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p291)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 소설을 분석하는 게 맞을까. 그래서 이 소설에 덧붙여진 작품 해설과 뒷쪽에 실린 심사위원들의 평을 열심히 따라 읽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 평론가들은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런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지. 소설보다 더 큰 해설이랄까. 신형철 평론가의 작품평을 읽고는 특히 감탄했다. 고백하자면 소설보다 더 좋았다. 그 평을 읽고 난 뒤에는 소설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어떤 연유로 이런 소설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감히 확신하건대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무척 즐거워했을 것 같다. 적어도 "사방이 트인 설원 한가운데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숨이 막히거나, "공상만 늘어놓고 막상 행동하진 않는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테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도 무의미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거다. 0.9:9.1 가르마를 한 채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작가를 상상해본다. 이 소설이 내게 준 건 없다. 울컥, 했다거나 피식, 거렸다거나 멈칫, 한번 하지 않았다. 정신적, 영적, 지적 자극은 앞으로도 이 작가에게서 받을 것 같진 않다. 그건 나도 원치 않아요, 하고 작가도 주장할지 모른다. 자신을 후장사실주의자analrealist(?)라고 명명하지 않는가. 그저 자신의 리듬에 맞춰 춤추는 이들. 그렇다면 이런 걸 기대하면 될까. 소설 그 자체보다 자신의 괄호를 신나게 채워가는 누군가의 열띤 몸짓을 읽는 재미.

 

작법이 달라지면 독법도 달라져야겠지. 아마도.

 

 

 

 

 

 

   필사적으로 뛰어내려오며 안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아니야. 난 그런 기도 안 했어. 그냥 눈이 오게 해달라고만 했단 말야. 그 말이 맞았다. 안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서양 나라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에서처럼, 그리고 목성과 화성과 명왕성에까지 눈이 펑펑 오는 꿈을 꾼 적이 있을 뿐이었다.

 

   1976년 크리스마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눈도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명왕성이란 이름은 천체에서 사라졌고 그리고 화성에 내리는 눈,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그것은 지상에 영원히 닿지 못할 것이다.

 

    

                                            - 은희경 단편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표제작의 끝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 앉아 예전과 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Y언니와 S언니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K언니는 손을 무릎에 놓고 시선을 내리 깐 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문득 Y언니가 하던 말을 멈췄다. 언니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눈 온다."

   우리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리는 어두웠다. 시간은 벌써 아홉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도로 건너편에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걷는 게 보였다. 검게 번들거리는 도로에 동그란 빛을 드리우며 차들이 줄지어 오고갔다. 

  "어데?"

  "나도 안 보이는데..."

  "저기 눈 오잖아."

  다들 왜 못 보냐고 혀를 차는 Y언니에게 언니는 노안이라 멀리 있는 게 잘 보이나 보다고 농담을 건넸지만 언니는 웃지 않았고 왜 자신한테만 보이냐고, 진짜 안 보이냐고, 저기 내리지 않냐고 거듭 말했다. 나는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유리창 가까이 얼굴을 갖다댔지만 뭔가 내리는 기색을 느끼지는 못했다. S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로등 불빛 속에선 좀 보인다. 뭐가 내리긴 내리네."

  "우산 안 쓰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잖아. 진눈깨비인가 본데."

   우리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하던 생각을 멈추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똑같이 중얼거리는 거다. 

   "눈 온다."

   이어지는 침묵.

 

   첫눈의 힘.

 

   다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려다 나는 말을 멈췄다. Y언니와 S언니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이 탁구공처럼 가볍게 허공을 오갔다. 나는 핑퐁의 어감이 참 핑퐁스럽다는, 그래서 탁구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고, K언니는 여전히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K언니의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언니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나는 자주 묻는 사람이다. 결혼초에는 남편에게 곧잘 묻곤 했다. 내가 그렇게 묻고 싶어지는 순간 남편이 짓고 있는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해독할 수 없는 표정.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편이 첫사랑 따위를 생각할 거라 의심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고, 그저 나란 인간이 아무 생각 없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였다. 당시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내게 생각은 빈 공간을 못견디겠다는 듯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지겹게 리플레이되는 노래소절이라도 머릿속을 채웠다.

   최근에는 그런 질문을 한 기억이 없다. 이제 남편은 생각이 많아졌다. 굳이 묻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갔다. 예전처럼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에도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우리는 그런 연배에 접어들고 만 것이다. 빼도박도 못하는 중년.

 

    나는 두 언니의 웃음소리에 창밖 풍경에서 시선을 뗐다.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와중에, 예전과 달라진 세상, 사람, 관계에 대해 설전을 벌이던 두 사람이 소리내어 웃고 있었고 K언니는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2015년.                 

   그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젖은 눈이, 내게는 올해의 첫눈이 되고 말았다.

 

   첫눈이 소담한 함박눈이라면 좋겠지만, 대개 첫눈은 이런 진눈깨비이거나 싸락눈이거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먼지같은 눈인 것 같다. 금세 사라지거나 곧 비로 바뀌어버리거나. 

   그런 면에서 첫눈은 첫사랑을 닮은 것 같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첫사랑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려왔던 식으로 찾아왔을까? 혹시 첫눈인줄 알았는데 먼지였다거나, 먼지인줄 알았는데 뒤늦게 눈이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녹아버린 뒤였다거나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화성에 내린 눈'처럼 지상에 닿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눈.

   그 어정쩡한 첫눈의 순간이 지나고

   다시 눈이 내린다. 온세상을 뒤덮어 버리는, 압도적인 눈.   

 

   물론 처음부터 쏟아붓듯 내리는 첫눈도 존재하겠지만, 첫눈은 '첫'에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서 훗날 생각해 보면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것에 불과할지라도... 

  어쨌거나 "단 하나의 눈송이"로 기억되는 것이다.

 

 

 

  덧. 

 

   1. 이 단편집으로 은희경 작가가 2014년 황순원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은희경 소설 가운데 <새의 선물>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든 책. 

       

 

 

  

  

   2. 첫사랑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1988년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하던 성덕선양 못지 않게 슬픈 사연이 있다. 

   한때 그리도 열렬히 사모했건만... 

   커밍아웃해버릴줄이야. 

    .

    .

    내 첫사랑은,

    WHAM!의 조지 마이클. ㅠ.ㅠ 

 

 

 

 

 

 

                      아직도 LP로 애장하고 있는 조지 마이클의 싱글 앨범!

                        그러고 보니 이 앨범을 선물해준 고교베프는

                        QUEEN의 프레디 머큐리의 빅팬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또한... ㅠ.ㅠ

                        적어도 내 첫사랑은 아직 살아 있다~!

                        열살쯤 어린 남친과 함께... ㅠ.ㅠ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 정귀보(鄭貴寶, 1972~2013)의 인생은 놀랄 만큼 단조로운 것이었다. 나는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모 출판사의 다급한 청탁을 받고 화집을 겸한 평전 집필에 착수했지만,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이력 탓에 고민에 빠졌다.

   정귀보가 태어난 곳은 담양이었지만 그건 정귀보를 설명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당시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운영했는데, 문방구라는 가게는 특별히 영업 수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약간의 부지런함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운영에 큰 문제는 없었다. 부모 모두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심각한 원한을 산 적도 없었고, 특별한 인생관을 가진 적도 없었으며, 삶의 의미 같은 걸 추구한 적도 없었다. 그런 건 그냥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옆의 가게들이 백반집에서 떡볶이집으로, 떡볶이집에서 오락실로 바뀌는 동안, 그들은 유리 진열장 하나 바꾸지 않고 문방구를 지켰다.

    하지만 정귀보가 태어나고 말을 채 배우기도 전에 그의 부모는 서울로 이주했다. 그의 모친 말로는 "벨다른 이유는 읎"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974년 가을의 어느 아침,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이 가게 셔터를 열고 돌아서다가 차양 끝에서 톡, 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빗방울에 얼비친 햇빛이 하도 애처로워서, 문득 이사를 가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서울로,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는데, 뜬금없다는 느낌보다는 아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훗날 정귀보의 모친은 혼자 앉아 뜨개질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 시절이 생각나면, 그 양반이 그날따라 쪼까 바람이 들었제 - 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의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살짝 스쳐갔는데, 그녀 자신은 그걸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p147) 

 

                                                             -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수록된 단편,

                                                                 "우리 모두의 정귀보"의 첫.

                                                                            

 

 

 

      소설을 읽다보면 누군가가 떠올라 한참 상념에 빠져 있곤 한다그건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이거나 오래 전에 연이 끊어진 동네친구나 직장동료이기도 하며, 몇 년 전 어느 좁은 골목길에서 스쳐지나간 모녀처럼 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특정 순간에 떠올랐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이기도 하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이장욱의 단편을 읽고 있는데, 강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강은 오래 전 교복차림으로 창가에 서 있거나 내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개만 몇 번 흔들고는 억지로 페이지를 넘겼다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집중하지 못한 탓이었는지 아주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다만 작가에 대한 애정만 확인한 뒤 책을 덮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이장욱의 세번째 단편집이 출간돼 "우리 모두의 정귀보"를 다시 읽어보았다페이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내게 다가와 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적극적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정귀보"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유일한 공통점이라고는 눈앞에 서 있어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기 어려운,"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얼굴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지 모를 우리 모두의 이웃같달까.

       

         초여름이었던가. 오전 햇살이 교실을 반쯤 비추고 있었다. 일종의 품평회를 앞두고 아이들은 흥분과 기대감에 젖어 조잘거렸다. 강은 어디 있나. 아, 저기 그녀가 교단 앞으로 걸어간다. 수줍어하며 자신의 그림을 이젤에 막 올려놓는다. 그녀의 둥근 어깨와 펑퍼짐한 엉덩이가 주름 하나 안잡히도록 교복을 탱탱하게 늘려놓고 있다.

 

         미술 선생은 팔짱을 낀 채 한참 강의 정물화를 들여다봤다. 키가 크고 마른 몸에 꽤 훈남인 그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한둘이 아니었다. 때는 80년대 말, 그는 여고의 몇 안 되는 남자 선생이었고 미술을 가르쳤으며 대머리에 배불뚝이도 아니었다. 이 모든 유리한 조건들 외에도 그에게는 결정적 한 방이란 게 있었으니 바로 유머감각이었다. 비록 그 유머가 가끔 누군가를 희생자로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가 침묵을 지켰으므로 교실 안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가 심각했기에 덩달아 우리 또한 심각해졌다. 모두의 감탄과 A를 얻어낸 그림조차도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진지한 시선을 받지는 못했다. 

 

         강의 캔버스에는, 꽃이 한가득 꽂힌 화병과 과일 몇 개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 모두 같은 대상을 그렸기에 테크닉이 뛰어난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강의 그림은... 달랐다. '잘' 그린 것도 '못' 그린 것도 그렇다고 '잘못' 그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저건 뭘까. 나는 선생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순전히 미술 선생이 좋아서 미술부에 가입했던 나는 미술부에서 가장 그림을 못그리던 학생이었지만 우리 반의 유일한 미술부 학생으로서 선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던 중이었다.  

 

         강렬한 색채. 단순한 형태. 한눈에도 시원스럽고 과감하게 드러난 정물. 그리고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굵고 짙은 윤곽선.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물과는 별도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 선을 말이다. 심각하게 강의 정물화를 보던 미술 선생이 중얼거렸다.

 

       "이거 진짜 못 그린 그림이거나, 아니면 천재가 그린 건데......"

 

      선생이 씩 웃으며 우리를 둘러봤다. 어떤 아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헉. 쟤가 말로만 들었던 숨겨진 천재? 나는 정색하고 강을 보았다. 단 한번도 평범의 범주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던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쩔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내 평범한 그림이 수치스러웠고 당장 미술부를 탈퇴하고 싶었다. 이런 꼴에 대회를 나간답시고 저녁마다 캔버스 앞에 앉아 있다니... 이윽고 미술 선생은 점수를 매기고 다음을 외쳤다.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강과 선생과 그녀의 그림을 번갈아봤다. 몇 몇 아이들이 웃었고 강은 얼굴이 벌개져서는 서둘러 이젤에서 그림을 내렸다. 강의 점수는 D였다. 그날 애정이란 게 얼마나 빨리 식을 수 있는지 나는 경험했다. 선생 가운데 가장 유머러스했던 미술 선생의 유머가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얼마 안 있어 미술부를 탈퇴했다.

 

      나는 그날 내가 느꼈던 모멸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강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였을까. 글쎄... 그녀의 그림이 그냥 좋아서였는지도, 혹은 그녀의 선이 지닌 그 독특함을 시기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정귀보처럼 "다른 응시생들의 작품에 비해 기본기가 떨어"지지만 "그 어긋남이 이상하게 생동감"을 주고 "기본기의 완성도보다는 향후의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평가를 그날 선생에게서 받았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정귀보처럼 그녀의 모든 평범한 행보가 우연이라는 줄에 엮여 천재 예술가라는 필연적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녀의 실력이 미대에 입학할 만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해 천재가 아닌 걸로 결론내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 D를 준 선생의 심미안을 여전히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창시절 내가 감탄하며 본 그 모든 그림은 잊었으나 (심지어 개인 화랑까지 갖고 있었던 미술선생의 그림조차도 떠오르지 않으나) 강의 그림은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여 년 뒤 남동생의 대학 졸업식장에서 강을 먼 발치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그녀가 굵게 웨이브진 긴 머리를 낭창낭창한 허리까지 드리운 채 불타는 듯한 새빨간 털코트를 입고 화려한 미소를 띠며 서 있어서 순간 내가 그녀를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보고 또 보다가 오래 전 그녀가 그려낸 그 강렬한 색채와 굵고 매력적인 터치를 얼굴에서 발견한 뒤 역시 그날의 그림은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게 아니었다고 다시 한번 확신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 초여름 햇빛을 등지고 선 채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던 그녀의 옆얼굴을 기억해내며 그때처럼 "나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매혹적이었다.

 

        나는 강을 두 번 만났다. 세 번째 만남이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강을 떠올릴 때마다 묘한 기대감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하여 소설 속 '내'가 정귀보를 회고하며 "정귀보의 인생에 대한 기나긴 글"을 쓰기 시작하듯 "보편적 궁극"의 인간이 어떻게 비범한 인생을 시작했는지, 그 결정적 순간을 고교동창생으로서 증언하는,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한다. 

 

 

        "어느 날, 나는 거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오는 정귀보를 보게 될는지는 모른다. 해변에서 놀고 있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우리 모두의 정귀보를 말이다.(p181)" 

 

                

 

 

                                    

기린이 아닌 모든 것 - 8점
이장욱 지음/문학과지성사

 

 

 

 

 2004년. 호미곶에서.


 

      사람은 의외로 쉽게 노숙자로 전락한다. 인도 시게오는 그렇게 생각한다. 6년 전, 근무하던 작은 출판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했다. 쉰네 살이었다. 그로부터 4년쯤 지났을 무렵부터 노숙자를 볼 때마다 이상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무리에 끼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불안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p79)

   

                                               -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수록작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번"의 첫.    

 

 

          

 

            마흔을 넘기면서 이런 저런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곤 한다. 고민이라기보다는 거의 망상에 가까운 불안이랄까. 내가 생각의 주인이 아니구나, 싶다. 말하자면 나는 부질없고 의미없는 소음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광장이자 통로이며 때때로 그 소음들이 이미지로 펼쳐지는 것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하는 유일한 관객이다. 결국 너덜너덜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차라리 안 자고 말지, 책이라도 읽는 게 낫다. 그렇게 오전 4시 22분을 맞이했다. 오늘도.

 

            성경을 거의 반만년 만에 꺼내들고 여호수아 1장을 묵상한다. 이런 고백은 친정 엄마가 가장 반가워할 테고 내가 이제껏 드린 그 어떤 생일선물보다 당신을 더 흥분시키시겠지만, "거 봐라, 네가 이제야 철이 드는구나!"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기록으로만 남긴다. 몸에 뿌리박힌 거부반응 같은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내게 신앙은 그런 것이다. 그래, 인정한다. 철도 덜 들어서겠지. 어릴 때 그 누구를 상대로도 제대로 한번 '개겨보지' 못하다가 평생을 사춘기처럼 보내는 건가. 반항도 때가 있는 법인데. 하지만 엄마가 반고리관과 달팽이관까지도 굳은살이 배이도록 강조했듯, 말씀이 동앗줄이었다. 이렇게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할 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은 놀라우리만치 힘을 발휘한다. 소음을 잠재우고 마음을 다독인다.

 

           그래. '형체 없는 불안'이란 말을 습관적으로 쓰곤 한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건 아니다. 그건 언제나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오래 신장병을 앓다 죽은 작은 어머니라든가, 어린 두 아이를 남기고 암으로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라든가, 셋째조카가 태어날 무렵 스쿠버 다이빙 사고로 죽은 큰 사촌 오빠와 대학 졸업과 결혼을 앞두고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동아리 선배라든가, 아니면 뜬금 없는 맥도널드 할머니라든가. 형체 없다,는 말은 현실화 되지 않는다, 를 뜻하는 것이지만, 현실 세계 속 비극은 소설에서처럼 필연적 개연성을 갖고 찾아오는 것 같진 않으므로 현실성을 논해봤자 그건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출구 없이 돌고 돌 뿐이다. 

 

           최근 들어 부쩍 시달리는 불안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그냥 갈지도 모른다는 거다. 누군가가 의미를 찾는 내게 '너는 참 여전하다'는 표정으로 충고하듯 말했다. 삶은 의미가 없다. 산다는 게 의미 있다. 법륜 스님 말마따나, 저기 산에 사는 다람쥐나 토끼가 의미 찾아가며 도토리 줍고 풀 뜯겠냐는 식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도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냥 사는 거지, 뭐.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별 거 있간. 하는 일이 잘 되냐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 누군가에게는 그냥 웃어주거나 그래도 물어보면 잘 놀고 있다고 하거나 마음이 삐딱해질 때면 아이 열심히 키우고 살림 잘 하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대꾸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럴 때마다 드는 열패감은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태어난 거다. 물 한 잔도 의미를 찾아 마셔야 하며 평생 '왜'를 달고 사는 인간으로 빚어졌다. 그러니 그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책임 지느라 오늘도 우왕좌왕하며 살았으며 밤이 깊도록 드라마를 찍어대며 궁상을 떨 밖에.

 

            마음이 그렇게 요동치는 순간, "너와 함께 한다"는 말은 얼마나 듣기 좋은지. 아마 친정엄마가 살기 팍팍한 시절을 견디게 해줬던 것도 그 말이었을 터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세상이 네게 등을 돌려도, 나는 너와 함께 한다. 그 말은 묘하게 내 불안을 형체 없는 것으로 바꿔 버리고서 좀더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가 근래들어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감을 직면하게 한다.      

 

그것은 무력감에 압도되어 뭔가 소중한 것을 방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분노였다. 분노를 통해 스스로 분발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도 없다. 인도 시게오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얕잡아 보지 마라! 그렇게 외치는 대신 후쿠다의 몸을 부축하고 걸어 나갔다. 후쿠다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이제 영영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p146).

 

                  

            소설에서는 인도 시게오의 오랜 불안이 우여곡절 끝에 노숙자가 되고만 친구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친구의 곁을 끝까지 지키면서 자신의 불안을 극복한다. 이 '무력감에 압도되어 소중한 것을 방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수단으로서(p146)' 인도 시게오가 분노를 선택했다면 나는 기도와 독서와 글쓰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라는 말을 나는 오래 아꼈다. 그 말이 풍기는 초연함이 좋아서였다. 이제는 "희망도 절망도 모두 끌어안고", 라는 말을 더 자주 떠올린다. 그 말이 지닌 근기와 성실함이 내게 절실하다.

 

 

 

55세부터 헬로라이프 - 8점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북로드

 

 

 

           덧.

           이런 밤에 동행하기에 그닥 좋지 않은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무대에서 곧 퇴장을 앞두고 있는 조연들, 혹은 단역들의 노곤한 낯빛을 맞닥뜨리는 건, 왠지 내 망상을 심화발전시킬 것 같다. 게다가 작가가 누구인가. 무라카미 가 아니던가. 그에게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말을 기대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또다른 무라카미처럼 양과 쥐와 난쟁이가 춤추고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로의 도피처를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실은 나 역시 불안으로 가득차 있고, 사는 게 고통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이 있고 아직 살아 있지. 맛있는 물도 마실 수 있고. 그리고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다시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 후쿠다, 도움을 받은 건 나란다(p167). 

 

         류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그가 동년배들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인사.

         ˝Hello, (my and your) life.˝            

 

 

 

       조중균(趙衆均)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내가 무딘 탓도 있었겠지만 구내식당 테이블이 6인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다 못 앉으니까 여기 없으면 다른 자리에 있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해란씨는 조중균씨가 오늘만 점심을 안 먹은 것도 아니고 그것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언니, 모르시겠어요?"

     얘는 말할 게 있으면 핵심만 전달하지 뭘 이렇게 떠보듯이 물어? 한달 전 신입으로 함께 입사한 해란씨는 그 나이치고는 신중하고 성실했지만 살가운 동생 느낌은 확실히 없었다. 하기는 안 그래도 해란씨와 난 가까이 하기에 좀 뭣한 관계였다. 석연찮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이였으니까. 입사해서 파악해보니 회사에서는 일단 수습을 거친 다음 해란씨와 나 중에서 선택할 생각인 것 같았다. 구인광고란의 0명은 최소수인 한 명이었던 것이다. 대학원도 다녔고, 성인 단행본은 아니지만 아동서 편집을 맡은 적이 있으니까 일단은 내가 유리했다. 하지만 해란씨도 만만치는 않았다. 뭐랄까, 반짝반짝했다. 며칠 전 퇴근길에서 부장은 해란씨 아르바이트 경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학교 다니면서 별일 다 했지만 해란씨는 정말 고난의 행군이더라고. 요즘 애들 하듯이 어디 인턴, 어디 인턴, 공모전 이런 식으로 채운 것도 아니야. 노동, 말 그대로 노동 현장에서 뛰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영주씨는 말 그대로 버젓한 경력, 응? 정식 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 자리에 왔고 말하자면 팩에 든 고기지. 원래 생산할 때부터 정식 팩에 든 고기. 해란씨는 주먹고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목살 근처 아무 살이나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다보니까 어, 제법 이게 어엿한 상품이 돼 있는 거 말이야. 주먹고기, 내가 비유가 이렇게 좋아. 주먹고기 좋아하나?"

      고기에 비유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주먹고기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

                                                              김금희의 <조중균의 세계>의 첫.    

 

 

 

          

 

           나는 중심이 흔들린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가로수 이파리들이 바람에 떠밀려 가기라도 할 듯 허옇게 뒤집힌 채 흔들리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는 오늘 좀 늦는 모양이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봉두난발한 채 몸을 떠는 바깥 풍경이 감각적으로 와닿지 않을 만큼 카페 안은 쾌적하고 고요했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야구캡을 눌러쓴 젊은 남자가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한 채 볼펜으로 모자 챙을 툭툭툭 건드렸다. 마주앉은 여자가 허리를 쭉 펴고 그를 쳐다봤다.

 

         말하자면, 원자는 텅 빈 잠실 주경기장 같은 거야. 거기 푸른 잔디밭 한가운데 새빨간 사과가 놓여있다고 치자. 그게 원자핵이야. 거대한 원자 안에 아주 작은 원자핵이 있는 거지. 그런데 바깥 트랙에 웬 이상한 녀석이 방향을 바꿔가며 정신사납게 뛰고 있어. 그게 바로 전자야. 원자의 가장 바깥 궤도에 있는 전자를 최외각 전자라고 하는데, 이 숫자가 8개일 때 안정적인 상태가 돼. 이런 걸 옥탯이라고 하는데, 

 

         옥탯이요? 여자가 말꼬리를 물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린 여자애였다. 남자가 모자를 벗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는 다시 썼다.

 

         너, 옥타브 알지? 옥타가 8이란 뜻이거든. 옥탯, 옥타브, 8! 이렇게 기억해. 자, 다시 잠실경기장으로 돌아오자, 우리. 바깥트랙에 '최외각전자'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육상 선수들이 뛰고 있어. 몇 명? 그렇지! 여덟명이 이렇게 뛰는 한, 안정적이야, 불안정적이야? 그래, 안정적이야. 잠실 경기장이 오페라극장이나 전국노래자랑 무대로 바뀌는 일은 없는 거야. 이 말을 교과서적으로 한다면, "다른 물질에 화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거지.

 

        남자는 좋은 선생이었다. 원자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 귀에 착착 감겼다. 고등학교 때 이런 화학선생을 만났다면 좋았겠지. 그는 대기중에 존재하는 비활성기체들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고, 순간 나는 저요, 저요, 하고 외치고 싶어졌다. 비활성기체라고 하면, 나도 좀 아는 게 있었다.

 

       가령, 공기의 0.93%를 차지하는 아르곤(Ar)은 무색, 무미, 무취의 기체로 어떤 물질과도 결합하는 일 없이, 이 젊은 선생의 말을 인용하자면, 8명의 정예대원- 그렇다, 최외각전자!-가 바깥 트랙에서 뛰고 있는 터라 다른 원자에 반응하는 일 없이 대기 중에 홀로 고고하게 떠돈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기체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 있으니, 바로 '노블 기체 Noble gas.' 이른바 독고다이를 주장하는, 남들 보기엔 '니 잘났다' 부류로 묶일만한 녀석들인 것이다.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원소들이랄까.

       

        왜 꼭 같이 행동해야 해요?

 

        나는 오래 전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1993년의 봄은 쌀 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시위로 거리가 시끄러웠다. 난생 처음 최루탄 가스에 상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울며 토하던 봄이었다. 동아리 선배가 치약을 손가락에 짜서 다가오길래 그걸 어떻게 바르냐고, 웃으며 설레발 친 걸 후회하며, 아니 애초부터 동아리 선배를 왜 따라 왔던고, 후회하며 울고 토하던, 그런 봄. 평소 도서관에만 다니던 친구까지 다소간 어정쩡한 자세로 시위에 참가했으니 동기들 대부분이 함께 그 거리에 있었고, 그건 드문 일이었다. (훗날 생각해보니 그렇게 '쪽수'가 많은 시위는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동아리 혹은 과 선배들에게 이끌려 어느새 차도를 점거했다. 이슈가 이슈인 만큼 거리는 시민과 학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수줍게 구호를 따라 외치고 어색하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보였던 건. 

 

        그녀는 시위대에서 비껴 선 채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경계석에 올라 서더니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며칠 전, 과 전체로 움직이자는 과대표의 말에 내심 불만이 있건 없건 침묵을 지켰던 우리와는 다르게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밝힌 건 그애뿐이었다. 

 

         왜 꼭 같이 행동해야 해요?

 

        그애가 우리와는 다른 저쪽에 서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의 애티튜드가 '기록자'도 '관찰자'도 아닌 '구경꾼'의 것으로 해석이 됐고, 내가 피사체로 전락한 듯한 기분에 불쾌해졌다. 어쩌면 그런 그녀의 포즈는 본격적인 90년대를 알리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날 이후로 그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녀와 동류로 묶일 만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그들은 정치적 성향도 삶의 가치관도 종교도 제각각이었다. 그런 그들을 한데 묶는 건 나 홀로 고를 외치며 끝까지 가는 멘탈이랄까. 어떤 여학생은 엄마에게 등짝을, 선생에게 손바닥을 맞아가며 6년간 교복치마를 한땀한땀 줄이기도 하고, 어떤 선생은 애국조회 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며 앉아 있다가 총장에게 찍혀 학교를 떠나기도 한다. 스물 네살의 어떤 캘리포니아 처자는 제지회사로부터 2000년 먹은 삼나무를 지키려고 2년간 나무에서 먹고 자며 1인 시위를 하기도 하고, 눈부신 꽃시절을 맞이한 청년들이 다양한 이유로 입영 대신 감옥행을 선택하기도 하며, 어떤 십대들은 수능 시험날 우리의 꿈이 대학은 아니라며 대학 거부를 선언하기도 한다. 김금희 작가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 속 조중균 씨는 이름만 적어서 내면 점수를 받는 시험을 거부하다가 유급하고 군대 가서 사고를 당하며, 고집스레 오류를 잡아내느라 교정 기한을 넘겨서 직무 유기와 태만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되기도 한다. 그들을 때로는 경외심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다가도 때로는 사람이 저렇게 유두리가 없어서야, 살다 살다 저런 똥고집은 또 첨일쎄, 노친네처럼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건 '지나간 세계(p223)'의 가치를 고단하게 지키거나 다가올 세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자기'라는 세계의 가치를 바깥에 알리거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가치를 지키고자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기꺼이 내놓는 것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뭐랄까, 한없이 에고가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탓에 방어기제를 높히기도 했다. 귀 닫고 눈 감은 채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거리를 두기도 했다. 게다가 강고한 사람보다 어떤 '여지'가 많은 사람에게 더 끌리는 건 내 성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날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특공대 여덟이 원자핵 주변을 철통같이 지켜서 화학적 안정을 이룬 독고다이들. 다행이도 내게는 그런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가 있다. 이제 곧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아서는 예의 심상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안부를 묻겠지. 저 멀리서 풍문으로 맴돌 것 같았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걸 변함없이 신기해하며, 나는 무탈하게 지낸다고 평소처럼 대답할 것이다.

 

        젊은 화학선생이 몇년 전 양자 현미경으로 촬영된 수소 원자의 내부를 노트북으로 찾아 여자애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건 우주의 기원이라고, 남자의 다소간 흥분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저기 그녀가, 그녀의 세계가 이쪽을 향해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8점
정지돈 외 지음/문학동네

 

 

 

 

 

 


 

 

    2009년의 봄이라면 제일 먼저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지하1층 항암약물투여실 병상마다 짙은 갈색 차양봉투를 뒤집어쓴 항암제가 매달린 풍경이 떠오른다. 삼십대의 막이 내려가고 있던 그 시절, 나는 단테가 <지옥>편을 시작하면서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라고 노래할 때의, 바로 그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지옥으로 들어가며 단테는 그렇게 탄식했는데, 암센터 지하 1층 항암약물투여실의, 11이나 15 따위의 아크릴 팻말이 붙은 병상에 앉아 있으려니 그 말에 어찌나 동감이 가던지. 단테 덕분에 나는 그런 말들을 내뱉지 않을 수 있었다. 나보다 800년이나 앞서 살았던 단테의 그 탄식은 내가 겪은 이 고통이 어쩌면 모든 인류의 삶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 암센터 건물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어가면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연세대학교 학생들로 북적이는 횡단보도가 나왔고, 거기 서 있노라면, 건강하고 젊은 그들에게 고통이란 다른 세상의 일들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젊고 건강했으나 지난 몇 년의 어느 순간에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면서 나는 고통의 측면에서는 800년 전의 옛사람과 같아졌다. 말하자면 나는 단테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겪은 개별적인 고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중언부언일 뿐이리라. 항암약물투여실 병상마다 앉거나 누워 있던 모든 암환자들의 고통이 그렇듯, 나의 고통 역시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었지만, 또한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세상에 널린, 흔하디 흔한 고통이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코웃음을 치곤 했는데, 이제는 그 통속적 모순의 세계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2009년 4월, 그 노인이 내게 말을 걸 때까지 나는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지하 1층의 어느 그늘진 병상에 앉아서 '나는 단테다, 나는 단테다'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p159-160)


                                                         - 김연수의 단편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가운데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창밖은 따사로워 보였다. 길 건너편에 넓게 펼쳐진 숲은 어제보다 더 푸른 빛을 띠고 있었고, 실낱같이 가는 구름이 떠 있을 뿐 높고 너른 하늘이 한눈에 보였다. 하지만 시선을 지평선 멀리 던져보면 새벽 미명의 안개처럼 희뿌연 기운이 산을 뒤덮은 게 보였다. 산자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신도시는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존재를 드러냈다. 길 건너 숲을 경계로 그 너머에만 미세먼지가 껴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저쪽에서는 이쪽을 바라보며 상태가 심각한데, 혀를 찰지도.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방을 들쳐메고 집을 나섰다.

 

           벚꽃은 이미 졌다. 4월의 눈처럼 흩날리던 꽃잎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줄기마다 매달려 있던 자주색 꽃받침마저 우수수 떨어져 길은 봄의 잔해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지상 주차장 쪽으로 걷는데 저만치 잔디밭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슬쩍 몸을 돌렸다. 한손을 옆구리에 대고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은 자세로 여자는 담배를 피웠다. 뒷모습으로만 봐서는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것 같았다.  

 

         아파트 초입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다. 같은 라인에 사는 모녀였다. 붉게 한 무더기 핀 철쭉 앞에서 여자아이가 조막만한 손을 꽃받침처럼 얼굴에 받친 채 엄마를 보고 웃었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저런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와 키를 맞추느라 허리를 깊이 숙이고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보는 건 그맘때의 어린 J였고, 젊은 나였다. 돌이켜보니 좋은 시절이었다. 아이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엄마와 유치원으로 향했다. J가 다녔던 바로 그 유치원이었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행렬을 지켜보거나 바람결에 실려온 작은 이파리를 두 손 뻗고 좇아다니다가도 "같이 가요!" 엄마를 부르며 뛰어가곤 했다. 예전에 J가 바로 그랬듯이. 이윽고 모녀는 유치원 마당으로 들어서고 나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맞은편에서 다리가 0자로 휜 노인이 뒤뚱거리며 걸어왔다. 그녀는 복사뼈가 살짝 드러나는 검은색 고무밴딩 바지에 보라색 긴팔티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그녀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는 개가 그녀보다 더 뒤뚱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꽃무늬 조끼를 입은 개는 몇 발짝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그때마다 노인도 걸음을 멈춘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한 초로의 사내가 아파트 상가 계단참에 앉아 두 팔을 무릎에 올려놓고서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어디선가 밤샘 작업이라도 한 것 마냥 후줄근한 옷차림에 까칠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휴대폰 액정을 보더니 입가에 깊은 주름을 새기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활기찬 목소리. "어이, 아들!"

 

         그는, 그녀는, 그들은 이 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칼 로저스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각자 현재 지각하고 경험하는 세계이며, 그렇게 지각된 현실들은 서로 다르다고 했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봄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모르겠다. 이곳은 이토록 화사하고 따뜻한데 조금만 더 멀리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면 흐릿하기만 하다. 이미 내 세계조차도 불안과 불의로 잠식당하고 있는데도, 지금 내 현실이 평온하다고 착각하며 그 불온한 기미를 애써 모른 척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고통을 피한다고 해서 그게 평화로운 세계 안에서 머문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는 곧 깨닫는다. 어느 날, 그는 비쩍 마르고 키 작은 어린 삼나무들이 촘촘하게 식수된 공원길에 누워서 자기 옆으로 지나가는, “매우 화목하게 보이는 일가족, 그러니까 젊은 부부와 어린 딸을 바라보다가 부랑자꼴인 그를 보고 두려워하는 젊은 부인에게 남편이 저 사람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거야. 그냥 없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그 화목한 가족이 사는 세계에서 지워지고 있었던 것이다.(p168)”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평온한 나날을 누리면서 나 또한 고통 받는 누군가를 내 현실세계에서 지워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봄은 더 이상 봄이 아니다.

 

          2014년의 봄을 떠올리면, 그렇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8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illustrated by K.Inyoung

                                                                                      instagram@po_ong.kong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자동차에 부딪혀 몸이 허공으로 치솟던 순간, 머리 속에 그 문장이 떠올랐다. 주위의 풍경들이 한순간에 이지러졌고, 소리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완벽한 단절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고, 생각나지도 않았다. 커다란 캡슐 속으로 머리부터 천천히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라는 문장이 두꺼운 헬맷처럼 내 머리를 감쌌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을 때 나는 정신을 잃었다.

     죽지 않았던 것은 그 문장 덕분이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정말 그 문장이 헬맷처럼 내 머리를 감싼 덕분에 나는 살아날 수 있었다. 때로는 생각의 힘이 몸에다 두꺼운 갑옷을 씌울 수 있다는 것을, 죽지 않으려고 애쓰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히말라야 산맥의 전설 속 설인처럼 나는 온몸에다 하얀색 석고붕대를 두르고 병원에 누워서 온종일 그 문장을 생각했다... 잠들기 전에는 그 문장을 주문처럼 외웠다. 그렇게 하면 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뜰 때마다 살아 있었다.

 

 

                                                                                  - 김중혁, <악기들의 도서관>의 첫.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벚꽃이 피자마자 비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 요즘 내 지갑에서 새는 돈처럼 아깝게만 느껴진다. 제발 좀 오래 붙어 있어라!

 

        늦은 아침을 먹고 세탁기를 돌린 뒤 발코니를 쓸었다. 문득 사위가 밝아지는 것 같아서 허리를 펴고 바깥을 봤다. 순식간에 구름이 걷히더니 하늘이 밝아졌다. 간간이 가지 끝이 흔들거렸고 벚꽃이 흩날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빗자루를 내려놨다. 그냥 츄리닝 차림에 모자만 눌러쓰고서 집을 나섰다. 오늘이 아니면 안되는 일들이 있다. 가령, 벚꽃길 걷기. 봄은 짧고 좋은 날은 드물고 꽃은 언제나 금세 진다. 내일부터 다시 비가 내린다 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한 무리의 여자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그들이나 나나 목적은 산책이었던지라 어느 순간부터는 일정 정도 거리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은 좋았던 시절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한 이가 자신의 전성기는 중 2때였다고 했다. 

       "2학년 때 수영 선수였어. 잘 나갔지, 그때."

       자의반 타의반 그만뒀다는 말에 누가 이유를 묻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고만 대답했다. 심각한 말투에 어쩐지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니 아들은 운동 신경이 뭐 그래?" 하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하자 다들 웃음보를 터트렸다. 화제는 육아와 교육과 집값과 노후준비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이제 우리 써줄 데가 마트밖에 더 있겠냐." "거기서도 언니 체력엔 금방 잘릴 걸!" "아놔, 소시적에 공부 좀 했는데, 다 필요없네!" "아이구, 스펙 좋은 젊은 얘들도 취직 못해 안달이에요. 이 아줌마가 현실 감각을 잃으셨어." 왁자지껄 웃고 떠들다가도 침묵이 찾아들곤 했다. 나는 좀 머쓱해져서 더 천천히 걸음을 뗐다. 자칫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거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꽃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 커피를 쏘겠다며 호탕하게 외치는 게 들렸다. 잠시 뒤 그들은 팔을 앞뒤로 씩씩하게 흔들면서 상가 쪽으로 멀어졌다.

 

         나는 카메라 초점을 맞춰보려 했지만 매번 손을 조금씩 떨었고 사진은 흐릿하게만 나왔다. 굵게 진 꽃망울을 보다가 괜히 심술이 났다.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나의 시절'이라 부를 만한 게 오래 전에 끝난 듯했다. 손에 힘마저 풀리는 마당에, 인정!  

 

        "지금도 작정하고 먹으면 많이 먹는데 이젠 고 다음날 아휴.. 어떤 날은 취하는 게 아니라 체한다니까."

        이번에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였고 목소리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걔랑 일곱 병을 먹은 거야.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네 병 또 먹고. 그런데 더이상 못 먹겠는 게, 목에서 술냄새가 나는 거야. 응. 그치. 그래. 소주가 달 게 느껴질 때가 있어. 야, 인마. 그런데 땀 많이 흘리고 먹을 때 진짜 조심해야 해."  

        나는 계속 팔을 후들거리며 벚꽃을 사진에 담으려 애썼다. 남자는 누군가와 휴대폰으로 떠드는 것 같았다. 포상휴가차 나온 장정 셋이서 세발낙지와 지리와 새우깡을 벗 삼아 동 터올 때까지 마시던 이야기 끝에 그는 혼잣말하듯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가 좋았지. 그땐 끄덕 없었어..."

        잠시 뒤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어, 사거리 지났냐? 그럼 다 왔네." 

        이윽고 전화를 끊었는지 조용했다. 흘깃 곁눈질해보니 남자는 벚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듯 퉁퉁 부은 얼굴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앞에서 소나타가 속도를 줄이면서 다가오더니 나를 지나쳐 정차했다. 떠들썩한 인삿말이 오가고 차는 떠났다.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좋았던 그때...가 내겐 언제지? 내가 오롯이 '나'로 존재했을 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가. 그저 아내나 엄마, 딸, 혹은 며느리라는 역할에 불과한 건가. 그 역할을 하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란 말인가. 진짜 나란 뭐길래?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종내는 내게 어떤 여지가 남아 있는지를 묻기에 이르렀다. 지금 벚꽃나무 곁에서 휴대폰을 들고 멍 때리는 내게 어떤 미친 자동차가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p109)."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산다 할지라도 이 문장으로부터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누군가를 불면의 밤으로 인도하고, 괴로워서 술을 찾게 만들고,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애인과 헤어지게 하고, 결국

 

           "무모할 뿐더러 세계의 평화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으며 돈을 벌 수도 없고 심지어 영원히 끝장을 볼 수 없는(p128)"

 

           그런 일을 벌이게 하는 문장... 

           

           안타깝게도 언제나 그렇듯 질문들은 또 다른 중차대하고도 현실적인 질문에 떠밀리고 만다. 안 하는 게 무모하고 곧잘 하면 집안 평화에 이득이 되며 잘만 하면 돈을 아낄 수 있는 일이다. 영원히 끝장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같긴 하다만. 게다가 이건 무조건 대답해야만 한다.

 

           오늘 저녁은 뭘 해먹지...... 흑. 

 

 

 

 

악기들의 도서관 - 8점
김중혁 지음/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