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꿈의 해석을 읽다>를 드디어 완독. 대표적인 중화권 인문학자라는 '양자오'가 지었고, '유유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어쩌다 보니 올 들어 유유출판사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됐는데, 작가들이 하나같이 목소리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들려준다. 프로이트를 해설한 이 책 또한 무겁지 않다. 부제가 '프로이트를 읽기 위한 첫걸음'인데, 그 첫걸음으로 완벽하다! 쉽고 재미있다. <꿈의 해석>보다 더 재미있을까 봐 염려될 만큼 재미있다;;

작가는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 인물이 놓인 '19세기 유럽'이라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배경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적 배경지식이 확장되며 당대를 풍미한 예술사조와 철학까지 훑게 되니, 이 자체만으로 풍성한 독서체험이라 할 만하다.

책은 들고 다니기에 딱 좋은 사이즈이며, 뒷날개를 접어 책갈피로 이용하게 만든 센스 또한 마음에 든다.

자자, 입문서도 읽었으니, 이제 십수년 간 책장에 꽂아만 뒀던 문제의 <꿈의 해석>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설마 버리진 않았겠지?!

 

1. 오늘 내가 낚인 기사는, 한 유명 배우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사칭하고 자신에게 성적 모멸감을 준 네티즌을 고소한 기사였다. 정신병자, 관심종자, 스토커라고 질타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나는 그의 지인이 남긴 듯한 댓글을 주목했다. 그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짓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의 블로그와 인스타까지 찾아봤다. 그는 자신을 킹메이커라고 믿고 있었고, 종국에는 대권을 잡으려는 야심찬 꿈을 꾸고 있었다.

 

2. 이상과 망상, 정상과 비정상, 꿈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요즘처럼 온갖 음모론과 피해망상이 널려 있는 시대에서는 이 경계가 매우 흐릿한 것 같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정신병자다. 정신병자는 환자가 아닌 사람보다 심리 기제의 운용이 다소 극단적일 뿐이다. 인간의 정신 상태는 하나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이쪽에는 정상인이 있고 저쪽에 정신병자가 있으며, 그 가운데 둘을 나누는 경계가 명확한 구조가 아니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로이트) 이후의 모든 예술가는 자기 안에 내재된 정신질환을 자각했다.... 20세기 예술은 기본적으로 광기의 예술이자 정신분열적 예술이다.... 프로이트의 저작은 사람들을 의자에 눕히고 끊임없이 기억을 되돌려 자기 자신의 비참함과 내면의 어둠을 깨닫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어둠 속의 괴물을 새기거나 그리거나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제거하고자 노력했고, 이로 인해 20세기 현대 예술이 출현했다. (p188-189)"


3. 어제 한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했다.

"그 책에 고등학생의 존속살해 사건이 나오거든. 실화야. 충격적인 뉴스여서 우리도 언젠가 듣긴 들었을 거야. 기억 안 나? 뭐 우리랑 상관 없는 이야기겠거니 싶어 아마 쉽게 잊었겠지. 일제고사 전국등수가 서울대에 들어갈 만큼 좋았던 얘였는데, 성적이 떨어져서 엄마한테 체벌을 받은 거야. 처음에는 회초리, 나중에는 골프채, 야구방망이, 뭐 이런 식으로 강도가 높아지다가 애를 며칠 씩 가두고 밥도 굶겼다네. 정신 좀 차리라는 뜻으로. 그러던 어느 날 이 애가 충동적으로 엄마를 살해한 거지. 사흘간 잠도 못 자고 굶고 매타작을 당했으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 애는 이해하지 못해. 일시적인 정신착란, 뭐 그렇게 된 거지." 엄마를 흥분시킨 그 첫번째 일제고사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 이 아이는 아무 문제 없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아이는 평..했다고 했다.

 

4. 그 엄마도 평..한 여자였다고 주위 사람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5. 언젠가 고교시절 베프가 호들갑을 떨며 한 동창에 대해 말해줬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였다.

"같은반이 아니어도 알 만한데. , 서울대 갔잖아, 진짜 기억 안 나? 그냥, 평범해. 공부만 하던 얘였는데... 그게, 그만 실연하고 정신줄을 놨댄다. 무슨 상처를 어떻게 받았는지... 학교 그만두고 집에 와 있대. 연애를 얼마나 지독하게 한 건지. 그럴 얘가 아닌데."

우리는 각자 생각에 빠져 침묵을 지켰다.

 

인간은 모두 잠재적인 정신병 환자다. (p186)

무척 연약한 존재인 인간은 강한 억압을 필요로 하는 경험과 맞닥뜨리면 아주 쉽게 정신병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미치는 것은 실연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실연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충격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미칠 위험에서는 도리어 멀어질 수 있다.(p168-169)

 

6. 오래 전, 고등학생 때. 현관문 앞.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 사춘기였으니 모든 게 다 짜증스러웠겠지. 무엇보다 신앙적으로 꽤 억눌려 있었다. 멱살 잡힌 채 끌려가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얘 왜 이러니,' 그런 뜨악한 표정이었다. 그때 나는 감정을 폭발하는 순간에도 엄마의 표정을 예민하게 살폈고 이성이 멀쩡하게 작동하는 걸 의식하곤 내심 한탄했다. 왜 나란 인간은 이런 순간에 정신줄을 놓지 못하지. 확 놔버리면 좋을 텐데. 아주 시원스럽게 내질러버린다면, 엄마가 황당하게만 나를 쳐다보고 있진 않을 텐데. 내 감정을 좀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를 텐데. 엄마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다가 집안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7.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프로이트의 입을 빌어 말하자면, 나는 정신줄을 놓을 만큼 억압받진 않았던 거다. 고작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릴, 딱 그 정도 폭발할 만큼의 억압이었던 거다. 그저 전형적인 사춘기를 앓았을 뿐. 어쩌면 그 정도의 미약한 분출이라도 있었기에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릎끓고 앉아 성경을 펼쳤는지도...

 

8. 틈틈이 경계를 넘어버린 사람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길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뉴스와 풍문을 통해서.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걸까, 나는 그게 언제나 궁금했지만 결코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저 너머의 일이니까. 비정상과 비현실의 세계에 내가 거주할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나는 이제 그 세계가 만인에게 열려 있다고, 저 너머가 아니라 바로 여기 도처에 입을 벌리고 있다고 느낀다. 수면 위로 3년만에 끌어올려진 세월호가, 그 처참하게 상처입고 돌이킬 수 없이 부식된 모습이, 이 세계와 우리 내면에 도사린 어둠의 은유 같다. 우리가 결국 '실패'했다면, 계속 '억압'당했다면, 끔찍하게 변형되고 뒤틀린 채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겠지. 1073일만에 심연 속에서 건져낸 건, 어쩌면 우리의 인간성인지도 모르겠다





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을 책장에 꽂다가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놓고 잊어버린 책을 발견했다. 안도현 에세이집 <그런 일>이었다.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배경의 힘으로 해오라기는 날아간다는 구절을 읽었다. 시인의 언어. 창밖을 바라봤다. 뒤로 물러설수록 희미해지는 능선들을 눈으로 좇았다. 녹음은 짙어지고 있을 테지만 가까이 가보지 않은 이상 확인할 길이 없다. 대기는 꽤 오랫동안 부옇다. 새들 역시 보이지 않는다. ‘배경의 힘으로날아간다.’ 그렇게 격렬하게 부각되는 새들을 보고 싶다. 그런 새들은 여행자의 태도를 지녔을 것 같다. 시인의 말을 시각적으로 느끼고 싶지만, 저 창 너머로는 무리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일 - 8점
안도현 지음/삼인


이편 하늘로는 철새 대신 군 헬리콥터들이 거친 굉음을 내며 지나치곤 한다. 며칠 전에도 세 대의 헬리콥터들이 하늘을 가로질렀고, 아이가 얼른 와보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베란다에 서서 육중한 철갑 뭉치들이 세 개의 점으로 작아졌다가 이윽고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아파트 단지와 인근 도서관에서는 철새들을 해마다 볼 수 있다. 바람의 길,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곳을 비껴가는.


황량한 계절,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요란하게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얼른 창밖을 내다본다. 철새들은 V자 대형을 맞춰 날아온다. 불현듯 열이 흐트러지면서 선두가 바뀐다. 고도를 낮춘 채 비스듬히 선회하다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북쪽으로 날아간다.

연구에 따르면 철새들은 앞선 새의 날갯짓으로 생긴 상승기류를 타고 움직인다. 그렇게 힘을 비축하여 장거리를 이동한다. 리더는 제 힘으로 날아야만 한다. 경험 많고 힘센 리더그룹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어떤 철새들은 일렬로 날기도 하는데, 그런 새들 역시 동료의 날갯짓에 의존하여 에너지를 아낀다. 이들은 옆 동료와 엇박자로 날갯짓을 하여 난류를 일으킨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는 식탁에 기대선 채 찌개 끓는 소리를 들으며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쇠재두루미떼 이야기를 읽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멘트를 모은, 허은실 작가의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에서였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8점
허은실 글.사진/예담

 

겨울이 다가오면 그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기 위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히말라야를 넘어야 합니다.

게다가 그 산맥엔

이 세상에서 가장 춥고 날카로운 바람이 살고 있죠.

하지만 새들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바람을 이기려고 할 게 아니라 읽어야

산을 넘을 수 있다는 걸요.

어느 순간 날갯짓을 멈추고 바람에 몸을 맡긴 두루미들.

그 바람이 가장 높이 자신들을 띄워 올린 순간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덕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가장 높은 봉우리를 넘습니다.”

 

배경의 힘으로 날아가고, 동료의 날갯짓에 기대 힘을 아끼고, 바람을 읽어 산을 넘는 새들. 나는 그 새들을 책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을 넘는, 나날이다.



 

                        <배경의 힘으로 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배경이라면.>  


 

 

     어느 날 저녁, 블루스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를 듣다가 블루스 음악가 찰리 머슬화

이트가 알코올중독으로 죽음의 위기에 몰렸다가 술을 끊은 이야기를 들었다. 1987년

텍사스 미들랜드에서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가 우물에 빠졌다. 수백 명이

아이를 구하려고 애를 쓰던 58시간 동안 뉴스는 쉬지 않고 온통 그 소식뿐이었다.

아직 두살도 안된 제시카 맥클루어는 지름 8인치(약 20센티미터), 깊이 22피트(약

6미터)의 우물에 빠졌다. 인부들이 우물 옆의 단단한 암반을 미친 듯이 파고들어 가는

동안 아이는 자장가와 위니 더 푸우 노래를 불렀다.

      라디오 진행자들이 그 아이 이야기를 하고, 텔레비전 뉴스 팀이 사건 장소에 몰려

와 경쟁적으로 사고를 보도하고, 전국의 신문 1면에 기사가 실렸다. 이 사건은 케이블

 뉴스 채널과 24시간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을 하러 가던 차 안에서 그 소식을 들은 머슬화이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이 아이의 상황에 비하면 내 문제는 별것 아니잖아. 왜 나는 이 아이의 반

만큼도 용기가 없는 걸까? 그래서 생각했죠. '그래, 아이가 구출될 때까지는 술을 한 방

울도 먹지 않겠어.'라고요. 말하자면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기도 같은 것이

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구해 낸 순간, 저도 구조를 받은 셈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레베카 솔닛 지음

 

 

                                        멀고도 가까운 - 8점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반비

 

 

1년이 지나고 다시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분노, 절망, 무력, 불신, 수치심의 바다.  

모든 희생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지면,

그제야 우리는 '구조'될 수 있을까.   

  


   해마다 봄이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즐겨 읽는다. 이제는 이상문학상 수상작보다 더 궁금하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더이상 궁금하지 않은 이유는 대종상 수상자/수상작에 무감해진 것과 비슷하달까.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집도 진작에 사뒀지만 읽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각설하고 '젊은 작가'와 '문학동네'라는 두 키워드에 이끌려 웬만해서 보지 않는 전자책을 다운받았다. 결정적으로 무료였다. 

 

                                     젊은 작가의 책 - 6점
문학동네 엮음/문학동네

 

   현재 '젊은 작가'로 대표되는 작가들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책과 현재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책, 피하고 싶은 책 또는 길티 플레져를 느끼며 읽는 책과 최근 머리맡에 놓여 있는 책...

 

   몇몇 작가들의 경우, 작품 스타일이 그들이 아끼는 작가와 작품 들의 면면에서보다 대답하는 방식과 문장에서 먼저 엿보였다. 작가 인터뷰집을 읽는 재미랄까. 구어체로 진행되는 짧은 인터뷰임에도 그들만의 문체가 마치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처럼 드러나는 게 흥미로웠다. 


    참,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하나마나한 것처럼 여겨졌다. 청와대로 그 목록을 전달할 것도 아닌데 물어 뭐 하나. 가장 인상적인 대답은 황정은 작가의 답변이다.

      

 

헌법. 책이랄 것도 없이 법제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함초롱바탕체 13포인트로 인쇄하면 A4 용지로 17페이지도 되지 않아.

 

 

    작가들이 언급한 책들 가운데 읽고 싶은 것들을 메모해뒀다. 그 가운데 넘버 원은 이상우 작가가 십대때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고 읽어 이틀만에 완독했다던, 존 스웨드의 <마일즈 데이비스 평전>이다. 나라면 점심시간만이 아니라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까지 쉬지 않고 읽어도 이틀만에 완독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마음만은 그러고 싶을 정도로 흡인력이 좋을 것 같다.   


    책의 분량은 매우 짧다. 질문도 몇 안되고, 답변들도 그리 길지 않으며, 수록된 작가도 열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료 ebook인 건가. 다 읽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페이지를 더 넘겨 보니 알랭 드 보통을 위시한 몇몇 외국 작가들의 인터뷰가 마치 부록처럼 실려 있다. "<작가의 책> 미리보기." 그제야 이 무료 전자책이 다른 책의 광고였음을 알아차렸다.  

 

 

  

    <작가의 책>

    영미권 작가 55인의 '독서생활'에 대한 전격 인터뷰집.

    매주 뉴욕 타임스의 서평코너 'By the Book'에 실린 글들을 엮었다고 한다. 원제도 <By the Book>이다. ("머리맡에 있는 책이 무엇이냐"원저의 첫번째 질문과 "당신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줬고 당신을 작가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보면 원제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인터뷰이'보다 그들이 읽었고 읽고 있으며 읽고 싶은 '책'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작가론 혹은 창작론이 궁금하다면 <작가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읽는 편이 나을 듯.


     아마존 서평 몇 개를 읽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황정은 작가처럼 대통령에게 '헌법'을 추천한 작가들이 몇 있었다는 점이다. 한 리뷰어가 오바마의 팬이었는지 반기를 들었다. 오바마는 법을 가르친 적이 있고 아마 대부분 암기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훗. 어쨌거나 <젊은 작가의 책>에서는 뜬금없는 질문처럼 여겨졌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의 질문을 고스란히 옮겨왔던 거였다. 그래, 오바마는 뉴욕타임스를 읽을 테니까. 바빠서 다른 답변들은 건너뛴다 해도 자신을 위한 추천도서 정도는 살필지도 모를 일.   

 

   자, 이제 만져보지도 못한 책에 대한 결론: 낯선 도시의 지도에서 생소한 이름들을 맞닥뜨릴 때의 설레임을 이 책에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책 - 6점
패멀라 폴 지음, 정혜윤 옮김/문학동네


   덧.

 

   1. 언제 어디서 읽느냐는 질문은 평범한 질문이지만 작가의 일상을 드러내서 좋았다. 틈날 때마다 어디서든 읽지 않겠냐고 생각할 법한데, 답변들이 천차만별이었다. 

      그 가운데, 이상우 작가의 '수영장을 오고갈 때 길에서 읽는다'는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수영한 뒤에는 몸의 느낌이 달라져서 독서 감각도 달라진다고. 한 외국작가는 한때 팬케이크 하우스에서 독서를 즐겨 했는데, 그곳에서는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면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을 수 있는 데다가 무려 갤런 사이즈의 커피를 줬다고 했다. 갤런이라면 대략 3,000리터다. ㅋ

 

  2. 누군가 꼭 써줬으면 하는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이스 캐럴 오츠가 거의 완벽하게 대답했다. 그러게요, 그런 책이 존재할 수 있다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ㅋㅋ 

 


   아름다운 산문으로 된, 풍부한 상상력이 깔려 있고, 깔끔하며 솜씨 있는, 압도적인 이야기와 독자를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인물 덕분에 단순히 그 책을 주의 깊게 읽기만 해도 분자생물학, 신경과학, 심리언어학, '마음에 관한 철학', 그리고 '초끈이론'의 발견들을 그 발견자 또는 창안자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읽고 싶어요.

 

 


 

 

 

책을 읽다 말고 눈을 감는다. 눈이 침침했다. 건조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할 일을 미뤄두고 책을 읽던 중에 무언가가 나를 툭 치고 갔다. 오랜만에 감각이 예민해져 있다. 최근에는 집중하는 일이 어렵다. 잠시 뒤 문장 하나가 떠올랐고 그제야 무엇이 마음을 어지럽혔는지 깨달았다.

 

"자의식은 거대한데 자아는 없다."

 

나는 눈을 뜨고 페이지를 앞으로 넘긴다. 

 

제임스 우드라는 문학비평가는 최근 "소설이 불필요한 사실과 언어로 비대해지고 있다고, 특히 미국 소설이 그렇다고" 믿었고, "그 결과, 최소한 미국에서는, 자의식은 거대한데 자아는 한 톨도 없는 소설들이 판을 치게되었다"고 말했다. "수많은 걸 알고 있지만 사람 한명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는 정말 '똑똑'한 소설들"...

 

나는 은연중에 이 문장을 소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것으로 읽었다. 불필요한 감정과 욕망으로 비대해져 거대해진 자의식, 그러나 자아라곤 한톨도 없는 인간. 헛똑똑이.

 

혹독하네. 좀 억울해지는 걸. 

 

살살 좀 하자고 내 안의 비평가에게 고해본다. 

그는 오랜 세월 나를 비평해왔다. 자신의 안목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는 자신이 나를 잘 안다고도 믿는다. 그의 단호한 믿음에 여전히 의기소침해지곤 하지만 요즘에는 그와 팽팽하게 각을 세울 때가 많다. 좀 컸다 이거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대놓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경계심이 생긴다. 

 

나는 가까운 친구로 지낸 세월 덕에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 남자와 결혼했다. 아이를 낳아 그 아이의 중요한 순간-거창하게 말하자면 인생의 여러 '첫 장면'들-을 지켜봤다. 그렇게 보낸 근 십여년간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볼 수 있는 것만 볼 수 있었고 그것조차도 정확히 본다는 보장이 없었다. 

 

인간에게는 그/녀를 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각지대들이 있다.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그 사람의 고유성을 보여줄지도, 그곳에 그 사람의 진짜 자아가 거하는지도, 때로 그 사람의 비대한 자의식에 가로막혀 그 자아가 보이지 않는지도, 그 자의식이 자아를 지키기 위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내가 그렇게 거대해진 자의식으로 지키고자 애쓰는 게 내 자아가 아니라 자아상이라는 의심이 들면, 마음이 엉클어진다. 오늘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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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적당히 좀 하시지. 쳇.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 8점
존 프리먼 지음, 최민우.김사과 옮김/자음과모음

 

 

덧.

 

1. 지은이가 인터뷰한 70명의 작가 가운데

모르는 작가가 태반이고, 읽어본 작가는 손을 꼽는다.

책의 지은이, 존 프리먼이 세계적인 편집장이라는데 처음 들어봤다.

그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지은이의 '여는 글' 때문이다.

<당신과 나>라는 제목의 자전적 글이었는데, 지은이의 독서이력과 그를 소설의 세계로 인도한 결정적 작가인 존 업다이크와의 두 번의 만남, 그 사이에 부침을 거듭했던 삶의 편린들이 단정한 문장으로 쓰여있다.

그의 이야기와 문장에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집중시키는 데가 있었다. 이 인터뷰집에 대한 기대감은 (그가 만난 작가들보다) 순전히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단 한 명의 작가와 지은이의 '여는 글'만 읽어도 이 책을 만난 보람이 있을 듯.

 

2. 제임스 우드라는 (소설가이자 하버드 대학의 문학교수이기도 한) 문학평론가에 대한 외모 묘사를 읽다가 웃고 말았다.

"어딘지 모르게 죄송스러워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그는 토니 모리슨을 보고 "자기 등장인물보다 자기가 하는 말을 더 사랑한다"느니, 존 업다이크에게는 "책 쓰기를 자제하는 것보다 하품을 참는 게 더 쉬운 일처럼 보인다"느니 하며 신랄하게 쏘아댔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죄송스러워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깡마르고 상냥한 영국인"이라고 하니 웃음이... ㅎ  

작가들은 평론가를 참 싫어하겠어.   

 

3. 어느 인터뷰집에서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빠지질 않네...

 

4.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지은이가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역시 처음 들어본) 문학 계간지 <그랜타Granta>의 편집장으로 지내면서 인터뷰한 이들로, 이른바 "세계문학의 얼굴들"이란다.

그러니까 영화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의 원작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있지만 조앤 K. 롤링은 없다. 

그런데 이언 매큐언은 있는데 줄리언 반스는 왜 없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있는데 닉 혼비는 없다.   

 

5.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쓴 철학자, 로버트 M. 피어시그와 웬만한 소설보다 더 흥미로웠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신경학의, 올리버 색스.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 이름에 반가움이 앞서긴 했다.

두 사람 모두 철학자나 신경학의보다는 저술가로서의 아우라가 강하며 위의 두 작품 모두 소설처럼 읽히는 에세이 같았다.

어쨌든 이 인터뷰집의 기묘한 다양성을 짐작(만)했던 이유.      

   

                 

 

 

 

 

 

      요즘 J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로 셸 실버스타인의 시를 읽어주고 있다. J가 시집 뒤표지에 실린 작가 사진을 보고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작가다!" 하고 외쳤는데, 작가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라서 당황했다. 머리에만 털이 귀한, 털복숭이셨다. 훗. 소설보다 오히려 이 시집에 걸맞는 분위기랄까. 어린이도서관에서 빌렸지만 이걸 굳이 동시집이라고 해야할지. 여러모로 소장욕구가 치미는 시집이었다. 어떤 시는 삐딱한 시선이, 어떤 시는 막판의 반전이, 또 어떤 시는 삽화가 피식 웃게 만든다. 실버스타인이 그림도 그릴 줄이야! (게다가 그래미상까지 받은 작곡가이기도!) 번역은 김기택 시인이 맡았다. 시인의 작품들은 웬만한 소설보다 묘사가 탁월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재치 넘치는 글에 글을 살리는 그림과 번역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시집이었다.   

 

       J에게 시를 읽어준 뒤 제목을 맞추게 했다. 보통명사가 소재로 쓰인 시를 제외하고 대부분 틀렸고 그때마다 오기가 발동한 듯 "하나 더!"를 외치곤 했다. 시집에 이렇게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건 김개미 시집 이후로 처음인 듯. J가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낭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걸 보니 엄마로서의 존재감이 급상승하는 것 같았다. 최근 몇 권의 시집을 내리 실패한 뒤라 더욱 만족스러웠다.

 

     다만, 베드타임 스토리의 목적을 생각해보자면 그다지......

     읽어보니 아이와 놀기에 좋지, 아이를 재우기에 좋은 책은 아니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그런 면에서는 더 효과가 있었다. J는 이 책만 들고 오면 내게 입술을 삐죽 내밀곤 했다. 이유는 하나. 재미 없단다. 명작이고 고전이고 다 때가 있는 법이지. J에게 제제는 그리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닌 듯. 아이유처럼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는 것이, 제제에게 아예 흥미조차 없다. 게다가 (내) 코끝이 찡한 장면에서 J는 한숨을... 요즘 들어 딸은 감정에 호소하는 장면을 못견뎌하는 것 같다.

 

    베드타임 스토리로 평소 J가 읽기를 바라지만 저 스스로 절대 집어들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읽게 된 책으로 <호빗>이 있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딸이지만, 당시에는 책의 두께에 질려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판타지가 그렇게 좋냐? 그렇다면 이 엄마가 판타지 최고봉을 맛보게 해주마, 큰 소리치며 읽어줬는데 과연 흥미롭게 듣더니만 일주일에 걸쳐 혼.자. 읽어치웠다. (그 책을 다 읽어주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아 내심 안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징검다리 삼아 <해리 포터> 시리즈로 건너가게 된 것 같다. 시리즈를 완독했던 건 이야기 자체가 지닌 힘 덕분이었겠지만. 어쨌든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폭망.


 

내가 하늘로 떨어진다면 - 10점
셸 실버스타인 시.그림, 김기택 옮김/비룡소

 



                    덧


   1. 베드타임 스토리 a bedtime story의 정의는 누구나 알겠지만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해주는 옛날 얘기"이다. 그런데 네이버 영한 사전을 찾아 보면, 두번째 정의는 하나같이 이런 식이다. "재미는 있으나 의심스러운/믿기 어려운 이야기"

      흠...

      하지만 구글에서 검색해본 영영사전에는 그저 잠자리에서 읽어주는 이야기라는 뜻 외에 별 다른 게 없었다. 딱 하나, 위키피디아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을 뿐.

      "베드타임 스토리는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흠... 

     종합해보면,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믿기 어려운 해피엔딩의 이야기'가 되겠다.


  2. 동시가 재미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첫번째 시집! <어이없는 놈> 표제시부터 큭큭거리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꼬맹이한테 빈정상한 초딩의 육성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다!

   피식피식 웃으며 시를 읽고난 뒤 J 왈,

   "아, 진짜 어이 없네! 엄마, 우리 태권도 도장에도 이런 애 있어!"    

 

 

              어이없는 놈 - 8점
김개미 지음, 오정택 그림/문학동네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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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봐라, 참을 수 없는 다른 일들이 더 있니? 끼어들어서 바꾸고 싶은 일들이 더 있어? 만일 있다면 잊어라. 넌 어느 것도 바꿀 수 없다.) 네가 가진 것이 지금 네가 가진 거다. (p130)

 

넌 널 진짜 위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널 위협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아니다. 널 위협하는 것은 네가 행하고 있는 사회적 운동들이 아니다.

 

널 위협하는 것은 네 사생활이다.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p135)

 

                                                - 필립 로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모든 만남이 의미 있지는 않다. 일이 힘 들이지 않고도 술술 풀리려면 적절한 때를 만나야 하듯, 사람간의 관계도 그렇다. 저이를 내가 다른 때에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는 만남이 어디 한둘인가. 인생의 곳곳에서 표지판 역할을 하는 철학도 마찬가지다.

 

가령, 괴테의 말처럼 30세가 넘으면 염세주의자가 되기 어렵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자의식과 자존심이 강한 청년기의 사치품인 염세주의를 평.. 지니고 싶다면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걸 꽃 피우고 싶다면, 방법은 있다. 아버지를 자살시켜라, 할머니는 정신병으로 앓게 하라,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라, 사랑과 세상을 저주해라, 평생을 하숙집에서 보내라, 유일한 자식은 사생아로 버려라. 그 정도는 되어야 자신의 개인적 회의와 비관을 철학으로 승격시킬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하는데 성공했고, 염세주의를 완성시킨 철학자가 되었다. (물론 환멸과 불안으로 황폐한 시대를 삶의 배경으로 까는 건 기본이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 삶을 살아서도 안 된다. 참고로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읽을 만하고 지혜와 기지로 넘친다는 평을 받은 <에세이집>의 보수로 10권의 기증본을 받은 게 고작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염세주의자가 안 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생물학적 나이와 물리적 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상과 사상에 경도하게 되는 듯하다. 사상도 그러할진대 책도(심지어는 동일한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은, 읽어서 좋은 때가 제각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필립 로스의 책을 읽고 있다.

 

줸장, 글 쓰는 게 싫어질 만큼 그의 글이 좋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8점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문학동네


    

 

   "나는 정원에서 철학자와 앉아 있다. 철학자는 우리 가까이 있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나는 저것이 나무라는 것을 안다"고 자꾸 반복해서 말한다. 다른 사람이 와서 이 말을 듣는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이 친구는 미치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철학을 하고 있을 뿐이다." (p824. 비트겐슈타인의 말 인용. The Duty of Genius 비트겐슈타인 평전.) "


                드디어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완독했다. 마지막 챕터를 남겨놓고서 책을 덮은 뒤 한 계절이 지났다. 여름은 언제 어디서나 가족과 함께였고, 고독은 고대 유물 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 같은 것이다. 그게 뭔가요? 누가 물어보면 어깨를 으쓱이며 글쎄요, 귀한 것 같긴 한데 저도 최근엔 본 적이 없어서... 대꾸하게 되는, 뭐 그런 것이랄까. J 말에 따르자면, "고독은 기분이 가라앉아 우울한 것 같은데, 마음이 전환되는 것 같은, 마음 깊이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이라는데 (헐... 벌써 외로움과 고독을 구별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고독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말하자면 말이지.      

                결국 그는 죽었다. 그렇게 끝났다.

               암에 걸렸다. 왠지 그럴 것 같더니.

               장례식 절차를 두고서 그의 친구들이 가톨릭 식으로 따를지 고심했다. 마치 잘못 치루면 그가 관에서 벌떡 일어나 생전에 내가 그렇게 가톨릭을 비판했는데 너희들이 내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따져 묻기라도 할까봐 소심해진 모습들이었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

                그가 남긴 유언이다.

                그의 철학은 난해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멋있고 그란 인간은 애처로운데 그의 삶은 묘한 감동을 준다. 자신이 하는 일에 진절머리 날 만큼 철저하고자 했던 철학자. 자신의 삶은 본성과의 철저한 투쟁의 연속이었다는 그의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저 너 자신을 개선시켜라. 그것이 네가 세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평전 - 10점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필로소픽

 

 

 

 

         

            올 여름은 유난히 여행이 고팠는데 그때마다 허기를 달래준 책.

             배수아의 독특한 여행 에세이,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이 책만 펼쳐들면 언제 어디서든 일상으로부터 수천 킬로나 멀어질 수 있었다. 이제껏 배수아의 글을 즐겨 읽지 않았는데, 이 에세이는 아껴가며 읽었다. 특히 몇몇 부분은 거듭 읽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이 책을 배수아 입문서라고 떠들어댈 생각이다.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 8점
배수아 글.사진, 베르너 프리치 사진/가쎄(GASSE)

              

                      

             유명인의 표사가 달렸다고 책을 선택하지 않는다. 책에 대한 실망이 그 책에 추천사를 단 유명작가(그것도 내가 꽤 좋아하는 작가)에게조차 번진 적이 몇 번 있어서다. , 사람마다 독서취향은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뒤부터 추천사는 책에 대한 정보라기보다는 작가 (혹은 편집인의) 인맥에 대한 정보쯤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오늘은 표사 때문에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오른쪽 귀퉁이에 이런 말풍선이 달려 있었다.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한 책” - 줄리언 반스

 

            그렇다. 줄리언 반스였다. (물론 그의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작년에 읽었던 그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가 떠올라서였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8점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이 책에 부제를 단다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쯤 될 듯 싶은데, 그의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5년이 지난 뒤 내놓은 에세이라고 할까. 소설로 시작해서 에세이로 마무리되는 독특한 형식의 책이었다. 작가는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빙빙 돌려가며 하다가 더는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자신의 절망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절제된 언어로 딴청 부리듯 하는 말들이 나는 더 아프게 느껴졌고, 아내를 잃은 상처가 어찌나 깊어 보였던지 이제 이 사람은 살면서 웃을 일 하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작가를 가장 많이 웃게 했다, 귀가 솔깃할 수밖에.

 

       

                               헬로 굿바이 헬로 - 8점
크레이그 브라운 지음, 배유정 옮김/책읽는수요일

 

 

             본격적으로 이 책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제목부터 언급해야겠다. 이 책의 구성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제목으로 바로 <Hello Goodbye Hello>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존 스콧엘리스의 만남에서 시작되어 윈저 공작 부인과 아돌프 히틀러의 만남으로 끝나는, 부제 그대로 “101번의 특별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두 유명 인사의 만남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또 다른 유명인사와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거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목차를 훑다가 최근 내가 불면의 밤을 함께 보내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눈에 띄어 그에 관한 에피소드 두 편만 읽어봤다.

 

               “그의 화려한 언변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 오스카 와일드+마르셀 프루스트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는 법” - 마르셀 프루스트+제임스 조이스

 

           오스카와의 만남에서 피식 웃었다가 조이스와의 만남에서 낄낄거렸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유치한 위인들이라니! 멋지잖아, 이 작가! 이쯤 되면 위인들에 대한 신랄한 뒷담화라 해도 무방하겠다.

 

             1) 무더운 여름, 웃을 일도 없고, 동시대를 사는 유명인사들의 인간적인면이 의도찮게 까발려져 하도 놀라다가 이제는 심드렁해지고, 그러나 인간이 인간적인 게 당연하지 않겠냐며 위안(?)을 삼고 싶다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들의 다른 면모를 그 증거로 들이대면서 그냥 웃고 싶다면, 추천.

 

              2)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라는 걸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

  

 


 

아직도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 있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베네딕트 컴버뱃치가 각인시켜준 인물, 앨런 튜링이 비트겐슈타인의 강의에 몇 번 참석하는 일화를 읽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도통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가 튜링이 반론을 제기하면 조금 이해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고 비트겐슈타인이 다시 부연반박을 하게 되면 내가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내 인지적 능력을 격렬하게 회의하다가 곧 의기양양해졌는데, 하버드 박사 과정을 밟던 맬컴이란 학생이-훗날 그의 가까운 친구가 되는데- 이렇게 고백해서였다. “비트겐슈타인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강의는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의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선택한 학생들임에도 대부분 두 사람의 논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수학보다는 비트겐슈타인에 더 관심이 있었다.” . .

 

 몇 년 전에 한 사이트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일본 초등학교 수학문제가 있다. J2학년때 배운 간단한 곱셈식이었다. J 덕분에 곱셈을 구구단이 아니라 덧셈으로 바꿔 배운다는 걸 수십여년만에 기억해냈다.

 

문제는 이렇다.

 

8명에게 펜을 줍니다. 한 명에게 여섯 개씩 주려면 몇 개가 필요할까요?

 

시험지 주인인 아이는 8x6 = 48이라고 써내서 틀렸다. 정답은 6x8 = 48이다.

 

이 문제를 두고 공학도들(을 위시한 수학전공자들)과 초등수학교육 전공자들 사이에서 끝이 안 날 것 같은 논쟁이 벌어졌는데 어찌나 흥미진진했는지 나는 자정이 넘어가도록 게시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자 그룹은 교환법칙에 따른 곱셈식의 무조건적인 참을 주장했다. 후자는 초등교육과정이 아이의 인지발달과정과 초등수학교육의 순차성, 계열성에 따라 세워지므로 초등교육현장- 이 경우에는 초등학교 2학년 1학기의 수학교실에서는 그 수학식이 조건적으로 거짓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한쪽은 초등학교 수준의 단순한 수학식이 절대적으로 참인 이유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겠다며 논문(!)까지 갖고 왔고 다른 한 쪽은 자신들이 그런 수학지식을 모르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초등교육학과 교육과정에 대한 지식이 없다며 맞섰다.

 

처음에는 나도 이게 왜 틀렸는지 황당했다. J에게 문제를 풀어보라 했다. 이제 고학년에 접어든 우리 따님, 이런 걸 내게 묻다니, 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답하시기를,

 

"어머님, 정답은 6x8 = 48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곱셈을 이렇게 배운다.

 

2개 이상의 수나 식을 곱하는 계산

곱셈은 기호 ‘×’를 사용하여 나타낸다.

ㆍ 곱셈의 원리
어떤 수에 몇을 곱하는 것은 그 수를 곱한 수만큼 더하는 것과 같다.

[예] ‘2×5’는 2를 5번 더한 것과 같다.

 

곱셈 본문 이미지 1

 

ㆍ곱셈식

곱셈으로 나타낸 식
‘2×3=6’은 ‘2 곱하기 3은 6과 같다.’라고 읽는다.

ㆍ 곱셈식으로 나타내기

곱셈 본문 이미지 4

곱하기

어떤 수나 식을 여러 번 더하는 것

[네이버 지식백과] 곱셈 (학습용어 개념사전, 2010. 8. 5., (주)북이십일 아울북)

 

곱셈이라는 개념을 처음 배우는 초등학교 2학년에게는 "8x6" 과 "6x8"은 아직은 다른 개념이다. (교환법칙은 3학년때 배운다고 한다.)

전자는 8을 6번 더하는 것이고, 후자는 6을 8번 더하는 것이다.

즉, 전자는 8개씩 6묶음이며, 후자는 6개씩 8묶음이다.

문제를 다시 보자.

8명에게 펜을 주는데 한 명에게 여섯 개씩 주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식은  6개씩 8묶음, 6x8 = 48이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곱셈을 배우는 첫번째 단계다. 그리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 아이들이 이 첫번째 과정을 잘 이해했는지 바로 '시험'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식을 다르게 쓴 문제의 학생이 이미 구구단 암기를 통해 아니면 선행학습을 통해 이미 교환법칙을 배웠다면 8x6 = 48 또한 맞는 답이 된다. 이게 이미 오래 전에 곱셈을 뗀 우리 어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수학적 상식이기도 하다. 초등교육 전공자들은 이렇게 논박한다. 시험이라는 건 배운 단원의 학습 내용을 학생이 정확히 이해했는지 평가하는 것이며, 교환법칙은 곱셈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들어선 다음 배우는 것이고, 아이가 곱셈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서 교환법칙을 썼는지 아니면 아직 개념이 명확히 들어서지 못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주장에 설득당했다. 

 

논쟁을 좇아가보니, (나도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등수학 교육과정의 실제를 알지 못하고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인지 발달 과정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추상적인 개념을 소화하기 어려워하는 '구체적 조작기'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구체물을 조작하며 배우며 놀이와 활동을 통해 더 쉽게 학습한다. 아직 손가락셈을 하는 나이인 것이다. 이 연령대의 (평범한) 아이들이 단지 '암기'를 잘 한다고 해서 인지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또한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격 없는 원어민 교사들이 단지 영어가 모국어라고 고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물론 전문지식은 기본이다. 하지만 잘 가르치는 것이 필수다. 특히 가르치는 대상이 어려질수록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과정이란 걸 짜고 교수법을 연구한다. 그걸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단지 일개 교사의 무지함으로 몰고가는 듯 보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 논쟁을 처음 접했을 때 했던 생각들이다.

 

튜링과 비트겐슈타인의 일화를 읽다가 이 골치아픈 논쟁이 문득 떠올랐고, 논쟁이 끝없는 평행선을 달렸던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애초에 이 논쟁이 소모적이었던 이유는 단지 감정적으로 흘러서가 아니라 논제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공유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아서였을까.  

 

 “예를 들면 튜링은 수학에도 (물리학에서처럼) 실험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과 물리학 사이의 비유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것을 반박하기 위해 먼저 튜링으로 하여금 (a) 그들이 실험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인정하게 하고 (b) 수학자들은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해야 했다. 그들이 논하는 내용은 털끝만큼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비트겐슈타인이 반박하려는 방식은 내가 이제껏 간과했던 것을 보게 했다. 바로 (a) 부분 말이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논쟁에 바로 뛰어드는 것 같다. 가령,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상대가 나와 같은 개념(혹은 방식)으로 그 언어를 사용할 거라 전제하는 것이다. 정의, 윤리, 발전, 특히 이런 류의 추상적인 단어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구체적인 단어들조차도 얼마나 다른 함의로 사용될 때가 잦은가.

 

비트겐슈타인식으로 이렇게 옮길 수 있을까.

 

(a) 그들이 논하는 수학식이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교육과정 속에서 다뤄지는 곱셈식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서

(b) 실제 초등학교 교육과정 상에서 같은 값을 지닌 두 개의 다른 곱셈식이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는지 살펴봐야 했던 걸까.

 

대상과 조건을 제한하는 (a)에 대한 합의 없이 (b)를 따지려 했던 것, 그것이 그들을 하룻밤을 꼬박 새며 평행선을 달리게 했던 원인이었을까. 긁적.

 

어쨌든 이 논쟁은 무지 흥미로웠다. 이젠 구구단도 흐릿해져가는 이 아줌마가 오죽하면 새벽까지 잠도 설치면서 충혈된 눈으로 게시물을 따라 읽었겠는가. 수학을 달리 접근하는 재미에 처음 눈뜬.....것도 있지만 싸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ㅠ.ㅠ 한편, 다시 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데에 안도했다. 불쌍한 우리 딸, 니 앞에 미분과 적분이 기다리고 있다!

 

참, 호기심에 아주 가까이 지내는 초등쌤 지인에게 물었다. ^^: 곱셈을 막 배운 2학년 학생이 이렇게 바꿔서 곱셈식을 쓰면 어떻게 채점하겠냐고. 현실적인 답을 들었다. 대부분 선행학습을 하고 있기에 구구단을 통해 교환 법칙을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일단 맞았다고 채점하겠지만, 곱셈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지 한번 불러서 확인은 해볼 거라고 했다.